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충청권에서 오랜기간 생활하였던터라
자주 뵙기도 하고 많은 자료와 조언을 주셨던 선배님이신
도계 박재완 선생님께서 남긴 일화 가운데 하나를 소개해 본다.
일반인들이 흔히 역학하면 백운학씨 하는 등식으로 유명 역술인은
일제 이후 백운학이란 아호가 한국 역술학계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그래서 이미 고인이 되신 서울 종로의 청산 백운학,
대구 화전동 자유극장 뒤에 계신던 영남 백운학,그리고 진주 백운학...
그리고 동양철학회장인 국봉 최원기선생의 스승 백운붕(본명 백용기)...
백운이라는 두자가 들어간 아호를 사용 해 온 역학인은 무려 7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정작 역학계의 거목들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장래를 예단 해 주고
영부인셨던 고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택을 취택한
관상과 풍수대가인 청오 지창룡 선생이 계시는 등
동양철학,한국 역술학계에는 수많은 기인이사가 명멸하여 왔다.
청오 지창룡 선생께서는 5,16직전 당시 박정희소장과 참모 몇몇이 방문하여
박장군과 독대 상담중 거사에 대한 은유예언을 하여 인연이 되신 분이시다.
그리고..그 많은 역학자중 동료들이나 일반 고객들에게도 너무 잘 알려진이 중에
게중에서도 두분의 유명한 박사주가 있다.
한분은 부산의 박사주, 또 한분은 대전에 계셨던 도계 박재완 선생이시다.
1979년 12월12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경복궁 일대에서는 정치적 격변이 발생했다.
이름하여 12·12 사태. 이틀 후인 12월14일 이른 아침
대전에 살고 있던 박재완은 서울 경복궁 근처의 모 안가로 강제로 모셔져야만 했다.
신군부의 군인들에 의해 부랴부랴 대전에서 서울의 안가로 납치되다시피 온 것이다.
그 이유는 12·12 거사 주체세력들, 사주명리학으로 그들 팔자를 보아주기 위해서였다.
과연 거사는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실패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인가.
평상시에야 합리와 이성에 바탕한 판단을 중시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수를 던질 때는
이성보다 이렇게 초월적인 신의 섭리에 의존하게 마련인 것이 인간이다.
그렇다면 그 신의 섭리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신의 섭리를 인수분해하면 사주팔자가 나온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그러니까 한국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사주팔자를 ‘신의 섭리’이자 ‘전생(前生)성적표’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12월14일이라면 12·12 불과 이틀 후다.
이틀 후라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던 시점이다.
그 긴박한 시점에 신군부 주체들이 다른 일 제쳐두고
자신들의 사주팔자부터 보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평소 생각하기를, 칼을 숭상하는 군인들은
사주팔자와 같은 흐리멍텅한 미신(?)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줄로만 알았다.
사주팔자는 다분히 문사적(文士的) 취향 아니던가.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군인들 역시 사주를 본다는 것은 의외였다.
사주팔자에는 문무의 구별이 없음을 깨달았다.
12·12라는 긴박한 역사의 수레바퀴 한쪽에서 벌어졌던
이 은밀한 일화가 세간에 알려지게 된 데는 계기가 있었다.
그 계기는 바로 ‘만세력’(萬歲曆) 때문이었다.
사주팔자를 보려면 반드시 ‘만세력’이라고 하는 역술 전문가용 달력이 필요하다.
만세력은 생년·월·일·시를 육십갑자로 표시한 달력이다.
일명 ‘염라대왕의 장부책’이기도 하다.
염라대왕의 장부를 보지 않고서야 운명을 알 수 없다.
만세력이 없으면 사주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보통사람들의 필수품은 신용카드이지만, 도사들의 필수품은 만세력이다.
신용카드는 놓고 가더라도 만세력은 반드시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도사는 주머니에 만세력 하나만 가지고 다니면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굶어 죽을 일은 없다.
자기 앞날의 운명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잠재적인 고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12월14일의 박재완은 만세력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군인들이 대전의 집으로 들이닥쳐 순식간에 납치했으니
미처 만세력을 챙길 심리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박재완은 서울에 도착하자 종로에 사는 제자인 유충엽에게 전화를 했다.
“나 지금 서울에 있네. 급히 오느라 만세력을 안 가지고 왔는데, 자네 만세력 좀 보내주게.”
“그러겠습니다. 어디에 계십니까?”
“글쎄…. 여기가 어디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사람을 그곳으로 보내겠네.”
이 전화가 끝나고 15분 정도 지났을 때쯤 건장한 청년 몇몇이 검은 안경을 쓰고
유선생의 ‘역문관’에 나타나 유충엽으로부터 만세력을 받아 총총히 사라졌다.
이 만세력 일화는 그때 스승인 도계 박재완으로부터
갑자기 전화를 받고 만세력을 전해준 유충엽씨의 글을 통해 알려 졌다.
1997년 월간시사지 ‘WIN’(월간중앙의 전신)에
‘역문관야화’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이 바로 그것이다.
유충엽씨는 역술인으로는 드물게 해방 이후(1949년) 대전사범을 나온 인텔리다.
대전사범이라도 나왔으니 이 일화를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글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잉크방울은 핏방울보다 진하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박재완이 감정한 신군부 주체들의 사주는 이러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운이 좋다. 그러나 10년쯤 지나면
‘재월령즉 위재이환’(財越嶺卽 爲災而還) 즉, 재(財)가 재(嶺)를 넘으면 재난(災)이 되어 돌아온다.”
그 예측은 정확한 예단의 결과물처럼 국회 청문회에 서게되고 절에서 근신 해야 했는가 하면
주체인물들이 감옥에서 보내는 영어의 몸이 되기도 하였다.
신군부 주체들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10'26 대통령 총격사건으로 사형당한 바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김재규는 신군부로부터 당한 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김재규 역시 박재완으로부터 사주를 본 적이 있었다.
원래 야심이 있었던 김재규는
1970년대 초반 이미 박재완을 찾아가 자신의 미래 운명을 점쳐 보았던 것이다.
그때 운명감정에 제시한 내용중 하나가 ‘풍표낙엽 차복전파’(楓飄落葉 車覆全破)라는 구절이었다.
이 문구는 보통 ‘단풍잎이 떨어져 낙엽이 될 즈음 차가 엎어져 전파된다’로 해석된다.
유의할 점은 이 구절이 김재규의 1979년 운세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초반 도계로부터 이 문구를 전해 받은 김재규는 1979년이 되자 차를 아주 조심하였다.
차가 엎어진다고 되어 있으니 자동차를 탈 때 조심한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탈 때마다 운전기사에게 조심히 운전하라고 여러번 주의를 주곤 했다.
그러나 김재규의 인생을 놓고 볼 때 ‘차복전파’에 대한 해석은 당사자가 잘못 알고 있었던 셈이다.
차(車)는 자동차가 아닌 차씨 성을 가진 차지철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전(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역술인 입장에서의 해석이 적절할 것이다.
차지철은 죽을 때 화장실에서 엎어져 죽었고(車覆), 김재규는 전두환에게 격파당했기(全破)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김재규는 죽었으니 차가 엎어진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했지만,
만약 차가 차지철을 의미하고
전이 전두환을 의미했다는 사실을 김재규가 미리 알았다면 과연 어떠한 역사로 진행되어 왔을까.
그 김재규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벌써 27년...
그들의 흥망을 예언하여 주셨던 박선생님께서 타계 하신지 어언 열일곱해...어느새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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