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풍표낙엽 차복전파’(楓飄落葉 車覆全破)

수미심 2018. 11. 7. 08:29

승자의 기록은 태양의 조명을 받아 역사로 남고, 

패자의 기록은 달빛에 바래져 신화가 된다.’

소설가 이병주가 남긴 명언이다. 필자는 이 말을 좋아한다. 
특히 역술계 고수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행적을 추적할 때마다 
이병주가 남긴 이 말이 오버랩되곤 한다.

사주팔자를 통해 염라대왕의 비밀스러운 장부를 슬며시 훔쳐보아야 하는 

역술가의 삶이란 태양의 조명을 받는 양지(陽地)의 삶은 분명 아니다. 

차라리 어슴푸레한 달빛에 익숙해져야 하는 陰地의 삶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역사의 정면에 나서지 못하고 

항상 이면(裏面)에 머물러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음지의 삶이 지닌 애환은 활자로 남겨진 기록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개개인의 깊숙한 사생활을 다루는 업무성격상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로만 후세에 전해질 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아다니던 이야기들이 뭉쳐 세월의 이끼가 쌓이면 

신화와 전설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 아닌가!

근래 한국 명리학계의 빅3 가운데 두 사람인 

도계(陶溪) 박재완(朴在琓·1903~92), 

제산(霽山) 박재현(朴宰顯·1935~2000)의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발견된다. 박재완과 박제현. 공통점은 

둘 다 박씨(朴氏)라는 점이다. 한국에는 역대로 박씨 성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기인·달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로부터 시작해 조선조 창업에 깊숙이 관여했던 

무학대사의 속성도 박씨였다. 그런가 하면 계룡산 신도안의 바위에 새겨져 

있던 풍수도참의 글씨도 ‘불종불박’(佛宗佛朴)이다. 

박씨 가운데서 미륵불이 나온다는 예언이다.

이로 인해 계룡산에는 박씨 성을 가진 도사들이 엄청나게 몰려 왔었다. 

근래 ‘신앙촌’으로 유명했던 감람나무 박태선 장로도 박씨이고,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도 박씨다. 왜 박씨인가? 한국의 지리적 위치는 동방이다. 동방은 오행으로 따지면 목(木)의 방향에 속한다.

박(朴)자에는 나무 목(木)이 들어 있다. 따라서 동방의 나라에 부합하는 성씨는 박씨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나무 목의 오른쪽으로 복(卜)이라는 글자가 첨가된다. ‘복’ 자의 의미는 점을 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배출되는 

영(靈)적 능력자 가운데 박씨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설이 있다. 

필자에게 풍수를 전수해 준 선생님의 성씨도 공교롭게 박씨였는데, 

언젠가 그 선생님과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이 ‘한국에서는 나무 목자가 들어간 

성씨인 박(朴)씨와 이(李)씨를 주목해야 한다’였다.


박재완 납치한 12·12 신군부 주체들

도계 박재완이 남긴 일화 가운데 하나만 소개해 보자. 1979년 12월12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경복궁 일대에서는 정치적 격변이 발생했다. 

이름하여 12·12 사태. 이틀 후인 12월14일 이른 아침 대전에 살고 있던 

박재완은 서울 경복궁 근처의 모 안가로 강제로 모셔져야만 했다. 

신군부의 군인들에 의해 부랴부랴 대전에서 서울의 안가로 납치되다시피 온 것이다. 그 이유는 12·12 거사 주체세력들의 명리를 보아주기 위해서였다.


과연 거사는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실패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인가. 

평상시에야 합리와 이성에 바탕한 판단을 중시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수를 던질 때는 이성보다 초월적인 신의 섭리에 

의존하게 마련인 것이 인간이다. 

그렇다면 그 신의 섭리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신의 섭리를 인수분해하면 사주팔자가 나온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그러니까 한국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사주팔자를 ‘신의 섭리’이자 

‘전생(前生)성적표’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12월14일이라면 12·12 불과 이틀 후다. 
이틀 후라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던 시점이다. 

그 긴박한 시점에 신군부 주체들이 다른 일 제쳐두고 자신들의 사주팔자부터 보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평소 생각하기를, 칼을 숭상하는 군인들은 사주팔자와 같은 흐리멍텅한 미신(?)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줄로만 알았다. 사주팔자는 다분히 문사적(文士的) 취향 

아니던가.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군인들 역시 사주를 본다는 것은 

의외였다. 사주팔자에는 문무의 구별이 없음을 깨달았다.

12·12라는 긴박한 역사의 수레바퀴 한쪽에서 벌어졌던 이 은밀한 일화가 세간에 알려지게 된 데는 계기가 있었다. 그 계기는 바로 ‘만세력’(萬歲曆) 때문이었다. 사주팔자를 보려면 반드시 ‘만세력’이라고 하는 달력이 필요하다. 만세력은 생년·월·일·시를 육십갑자로 표시한 달력이다. 일명 ‘염라대왕의 장부책’이다. 염라대왕의 장부를 보지 않으면 운명을 알 수 없다. 만세력이 없으면 사주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보통사람들의 필수품은 신용카드이지만, 도사의 필수품은 만세력이다. 신용카드는 놓고 가더라도 만세력은 반드시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도사는 주머니에 만세력 하나만 가지고 다니면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굶어 죽을 일은 없다. 자기 앞날의 운명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잠재적인 고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12월14일의 박재완은 만세력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군인들이 대전의 집으로 들이닥쳐 순식간에 납치했으니 미처 만세력을 챙길 심리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박재완은 서울에 도착하자 종로에 사는 제자인 유충엽에게 전화를 했다.

“나 지금 서울에 있네. 급히 오느라 만세력을 안 가지고 왔는데, 자네 만세력 좀 보내주게.”
“그러겠습니다. 어디에 계십니까?”
“글쎄…. 여기가 어디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사람을 그곳으로 보내겠네.”

이 전화가 끝나고 15분 정도 지났을 때쯤 건장한 청년 몇몇이 검은 안경을 쓰고 ‘역문관’에 나타나 유충엽으로부터 만세력을 받아 총총히 사라졌다. 이 만세력 일화는 그때 스승인 도계 박재완으로부터 갑자기 전화를 받고 만세력을 전해준 유충엽씨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1997년 월간시사지 ‘WIN’(월간중앙의 전신)에 ‘역문관야화’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이 바로 그것이다. 유충엽씨는 역술인으로는 드물게 해방 이후(1949년) 대전사범을 나온 인텔리다.

대전사범이라도 나왔으니 이 일화를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글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잉크방울은 핏방울보다 진하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박재완이 감정한 신군부 주체들의 사주는 이러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운이 좋다. 그러나 10년쯤 지나면 ‘재월령즉 위재이환’(財越嶺卽 爲災而還) 즉, 재(財)가 재(嶺)를 넘으면 재(災)가 되어 돌아온다.”

신군부 주체들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김재규는 신군부로부터 당한 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김재규 역시 박재완으로부터 사주를 본 적이 있었다. 원래 야심이 있었던 김재규는 1970년대 초반 이미 박재완을 찾아가 자신의 미래 운명을 점쳐 보았던 것이다. 그때 나온 내용 가운데 하나가 ‘풍표낙엽 차복전파’(楓飄落葉 車覆全破)라는 구절이었다. 이 문구는 보통 ‘단풍잎이 떨어져 낙엽이 될 즈음 차가 엎어져 전파된다’로 해석된다.

유의할 점은 이 구절이 김재규의 1979년 운세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초반 도계로부터 이 문구를 전해 받은 김재규는 1979년이 되자 차를 아주 조심하였다. 차가 엎어진다고 되어 있으니 자동차를 탈 때 조심한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탈 때마다 운전기사에게 조심히 운전하라고 여러번 주의를 주곤 했다. 그러나 김재규의 인생을 놓고 볼 때 ‘차복전파’에 대한 해석은 잘못되었다.

차(車)는 자동차가 아닌 차지철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전(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역술계에서는 해석한다. 차지철은 죽을 때 화장실에서 엎어져 죽었고(車覆), 김재규는 전두환에게 격파당했기(全破)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김재규는 죽었으니 차가 엎어진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했지만, 만약 차가 차지철을 의미하고 전이 전두환을 의미했다는 사실을 김재규가 미리 알았다면 역사는 과연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2만명의 사주는 봐야 물리가 터진다”

박재완은 1903년에 태어나 92년에 사망하였으니까 90세의 장수를 누렸다. 90세의 장수를 누렸기 때문에 도계는 많은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다. 고관대작과 기업가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사주를 보았다. 모모한 고위관료와 사업가치고 그에게 사주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만큼 적중률이 높았다. 그가 남긴 저술은 ‘명리요강’(命理要綱)과 ‘명리사전’(命理辭典), 그의 사후(死後) 그의 제자들이 간행한 ‘명리실관’(命理實觀) 등이 있다. ‘명리요강’은 명리의 핵심 원리들을 요약한 책이고, ‘명리사전’은 그 원리들을 사례별로 풀어 놓은 책이다.

특히 ‘명리사전’은 일본의 추명학자들이 일어로 번역본을 내자고 두번이나 요청했던 명저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재완은 이를 완강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한국 명리의 노하우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리실관’은 도계가 직접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사주를 본 임상기록이다. 이것을 보통 간명지(看命紙)라고 부른다. 수제자인 유충엽이 한문으로 된 간명지를 해석한 것이 ‘명리실관’이다.

사주에 대한 적중률도 적중률이지만 그의 인품도 남달랐다. 담백무욕(淡白無慾)해서 별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명성이 높아지고 적중률이 높아질수록 돈에 욕심을 내기 쉬운 법인데 그는 돈 문제에 담백하였다고 전한다. 그만큼 단순한 술객의 차원이 아니라 내면 수양에도 어느 정도 성취가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1992년 임종을 맞이해서도 그냥 가지 않고 후학들에게 감동적인 일화를 하나 남겼다. 바로 자신이 죽는 날짜와 시간을 미리 정해준 일이다.

죽음을 귀천(歸天)이라 했던가! 운명의 이치를 다루는 명리학자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짜도 정해져 있듯 죽는 날짜도 정해져 있다고 본다. 정해진 날짜에 하늘로 돌아가야만 끝맺음을 제대로 한 것이다. 귀천 날짜에 가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는 모습도 과히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갈 때는 가야 한다. 이 이치를 박재완은 몸으로 직접 보여 주었다. 그는 임종에 즈음해 자식들에게 자신의 귀천 날짜와 시간을 미리 예견하였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신신당부하였다.

정해진 그 날짜와 시간에 자신이 하늘나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그러므로 절대로 링거 주사를 꽂지 말아 달라는 당부였다. 링거 주사를 맞으면 인위적으로 얼마간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하늘의 법도를 어긋나게 하는 일이 된다. 박재완은 자신이 예언한 그 날짜, 그 시간에 조용히 운명하였다. 과연 일세를 풍미한 명리학자의 죽음다웠다. 도인이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즈음하여 일생 동안 닦은 내공을 바탕으로 초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커다란 서비스이기도 하다. 초연한 죽음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도록 해주는 법문이다.

필자는 도계가 지녔던 명리학의 내공을 파악하기 위해 ‘명리실관’의 임상사례들을 분석한 바 있다. ‘명리실관’에는 무수한 실전 사례들이 소개돼 있다. 내공은 실전체험에서 나온다. 명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실전 사례를 분석하는 작업은 내공 증강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도계는 아마도 수십만명의 임상경험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십년을 보았으니 말이다. 역술계에서 회자되는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약 2만명 정도의 임상을 해보아야 한다는 설이 있다. 2만명 정도의 임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리가 터진다는 것이다.

쉽게 설명한다면 사주팔자는 바코드와 같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때 스캐너로 바코드를 한번 휙 그으면 책값이 단박에 나오는 것처럼, 2만명 이상의 임상 경험을 가진 역술가는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사주팔자를 한번 휙 쳐다보기만 해도 격국(格局)이 나온다고 한다. 이는 여덟 글자라는 디지털을 인간사의 희로애락이라는 아날로그로 전환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여덟 글자의 디지털 속에 잠복되어 있는 숨은 그림을 찾아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무튼 ‘궁즉통’(窮卽通)이라는 말이 있듯 어떤 일이든 낑낑거리면서 골몰하다 보면 어느 순간 돈오(頓悟)의 깨달음이 오는 법이다. 2만명이라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0명씩 본다고 가정해도 1년이면 3,650명밖에 되지 않으니 줄잡아 6년은 쉬지 않고 중노동해야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필자는 15년 남짓 보았지만 이제 겨우 5,00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2만명을 채우려면 아직 멀었다. 필자 평생에는 불가능한 목표다.

양도 양이지만 질도 문제다. 전업 역술가가 아니고 필자와 같이 대학에 있는 사람은 상대하는 계층이 주로 학교 선생들이나 평범한 봉급쟁이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사주를 가진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다는 불리함이 있다. 엎어지고 자빠지며 ‘스리고에 피박까지 당하는’ 사람들의 사주를 보아야 재미도 있고 실력도 팍팍 는다.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퇴근하는 ‘나인 투 파이브’들은 인생의 기복이 적어 피박을 당하지 않으니까, 사주도 믿지 않는 경향이 있고 재미 또한 없다. 종교도 그렇지만 사주팔자도 수준이 높은 상근기와 수준이 낮은 하근기가 제일 잘 믿는 반면 중근기들은 잘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상근기는 계산이 빨라 믿고 하근기는 남들이 믿으니까 덩달아 믿지만 중간치기들은 이리저리 주판만 놓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끝난다.

어쨌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는 사람의 사주가 실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공부거리다. 그런 면에서제일 보기 좋은 사주가 정치인들의 사주이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이라서 한발 옆으로 디디면 교도소다. 인생살이에서 길흉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사주상에 나타난 길흉과 대조하기 쉽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정치인들이야말로 이 세상이라는 연극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배역을 맡은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 다음에는 연예인들이 좋다. 연예인들 역시 기복이 심하고 길흉이 확실하게 나타난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 같으면 탤런트 황수정의 사주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 어떤 운이 들어와 저렇게 망신당하는지 분석해 보고 싶다. 외국 가수 중에는 ‘파워 오브 러브’(power of love)와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부른 셀린 디옹이 필자의 사례 연구 대상이다. 어쩌면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예쁘고 노래 잘하는 젊은 여자가 뭐가 부족해 25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노인장하고 살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여자 사주에서 태어난 날짜가 임(壬)·계(癸) 일주(日主)는 백두노랑(白頭老郞:머리가 하얀 늙은 남편)하고 산다는 이치가 있는데, 혹시 셀린 디옹의 사주팔자가 여기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