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국회의사당 남근석

수미심 2017. 10. 19. 08:02

국회의사당 68톤 남근석

2009년 06월 05일 (금) 07:22:50 양봉식 sunyang@amennews.com


강명순 의원(한나라당·목사)의 국회 골방기도회는

아침 6시 45분에 시작한다. 기자(교회와신앙)가 그곳에 가기위해 지나쳐야 하는 곳은 국회의사당 후문이다. 그런데 후문 앞에는

거대한 돌이 하나 서 있다. 남근석(男根石)이다.

이돌은 지난해 국회개원 60주년기념비로 세운 거대한 자연석이다. 이 기념비에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의의 정당’ 이라는 문구가

새겨있다. 높이 7m, 하단 폭 2.6m, 상단 폭 2.2m, 무게 68t로

매우 크고 웅장하다. 문제는, 이 돌이 겉으로는 기념비지만

속내는 남근석이라는 점이다.

과거 기록에 따르면 현재 국회의사당이 자리한 서울 여의도 1번지의 터는 조선시대 궁녀들의 화장터로 사용됐다고 한다.

이처럼 국회의 본관인 의사당이 ‘흉터’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지세를 누를 목적으로 처음부터 남근석을 세우는 것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또한 궁녀의 원혼을 달랜다는 목적도 있었다.

실제 거석을 세울 당시 김태랑 사무총장은 절친한 풍수지리학자의 조언도 받았다고 한다.

68톤의 남근석은 그야말로 남성의 힘을 그대로 상징했다.

당시 김태랑 사무총장은 가까운 동교동계 인사로 부터 거석을

기증받았다. 설치비용으로 국회 예산 2억 1천만원을 들였다.

기증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국회예산으로 거석의 비용을 지출한 것 이 돌은 전라남도에서 올라왔다. 처음에는 거석만 세웠다가

설치 한 달 뒤에는 거석 좌ㆍ우에 약 1m 높이의 둥근 모양의

보조석을 두었다. 남성의 고환을 상징하는 돌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거석 옆에 두는 것이 부자연스럽다고 해서

문구를 새겨 넣었다. 그것이 ‘국민과 함께하는 민의의 전당’이다.

   
▲ 옮겨지기 전의 남근석 모습


이 때문에 한국언론회는 지난 2008년 6월 20일 낸 성명에서

 “국회의사당과 같은 민의의 전당에 남근상과 같은 희화화된

조형물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정치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상징물로 웃음을 자아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18대 국회가 들어서면서 이 문제는

더 이상 불거지지 않았다.

21세기에 매우 우스꽝스러운 알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일어난 것. 강 목사는 이 돌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성폭행 당하는 느낌이야”고 했다.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궁녀의 원혼을 달랜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했다.

성경에도 이런 형상들은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셨다.

이런 물건은 영적으로도 좋지 않다. 우상의 가증한 물건은

그 자체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

돌이나 나무가 무슨 능력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상이나 샤머니즘적인 물건들을 통해

악한 영적세력들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 기계를 동원에 68톤의 돌을 빼내고 있다.

강명순 의원이 돌을 없애는 일을 위해

골방기도 식구들과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두고

새벽기도하는 중에 대정부 질문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것을 알았다. 강 의원은

대정부 질문 때 총리에게

이 문제를 거론하기로 했다.

이런 문제로 대정부 질문을 하는 것이

무리가 될 수도 있었다. 대정부 질문은

정부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남근석은 국회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4월 10일

강 의원은 한 총리에게 대정부 질문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총리에게 “공무원이 왜 그렇게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느냐? 공무원이 대낮에 술을 마시고, 골프를 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따졌다. 그리고 그는 국회에 그런 혈세를 낭비하는 사례가 있다며 사진기로 찍은 것을 A4용지에 출력해서 보여주었다. 강의원의

발언과 출력했던 사진이 카메라에 잠깐 비추었다. 그런데 남근석 관련한 발언은 곧바로 마이크가 꺼지는 바람에 대회의실 참석자는 물론 방송실에서 더 이상 강 의원의 발언을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속기록사가 내용을 기록해야 했기 때문에

강의원의 자료를 토대로 내용을 완성했다.

그리고 곧 10분후에 박계동 사무총장이 속기록내용을 가지러왔다.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속기록를 통해

국회의장이 남근석에 대한 사항을 알게 되었다. 시비거리가

될 수 있고 부끄러운 일이 있음을 감지한 국회의장은

원칙적으로 남근석을 제거하기로 했다.

박계동 사무총장이 강 의원에게 “공중에 폭파해버리든지,

한강에 빠뜨리던지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

양평의 한 화가가 믿음으로 수거 비용을 감당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잘 진행되지 않았다.

수거해 가기로 한 날 비가 왔다. 한 주가 미뤄졌다.

그리고 결행하기로 한 날에 또 비가 왔다. 더구나

그날은 4월 초파일이라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또 연기되었다.

그런 가운데 박계동 사무총장이 남근석을 국회 밖으로

유출할 수 없다는 통보를 했다. 사무처의 자체 검토 결과,

기념비를 건립하는 과정에 거액의 국회 예산이 들어가

현재 국회 재산으로 잡혀있기 때문에 경내에서 반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국회의사당에서 멀리 떨어진

동문방향 헌정기념관 뒤의 공터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 눕혀서 트레일러에 싣는 남근석

 


취재 과정 중에 기자(교회와신)는 조각 전문가인 정 모 교수에게 기념비의 감정을 의뢰했다. 정 교수는 “기념비라고 하면

글씨가 의사당 쪽을 향해 서 있어야 하는데 측면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것과 함께, 의사당 정면에서 보면 남근을 상징하도록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아래 둥근 두 개의 돌을 함께 놓아 의도성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또 “돌이 워낙 커서 이동하는 것이 어렵다면 위치를

기념비 용도로 틀어 바르게 세우고, 옆에 있는 두 개의 돌을

치우면 상징성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엄창섭 교수(고려대 해부학실)는 “거세하면 남자 성기의 기능이 상실되는 것처럼 국회 재산이라는 이유로 옮기는 것이 어렵다면 기능상실과 기념비 용도로 세우면 될 듯 싶다”고 의견 내놓았다.

 

 

 

   
▲ 남근석이 제거되어 텅빈 곳에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일주일 뒤에 강명순 의원이 홍천의 남궁 선생 생가에서 무궁화 12그루 구해와 심었다.


국회의사당 후문에 버티고 있던 돌은 결국 지난 5월 23일(토)에

국회 헌정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비가 와서 옮길 수 없다고 핑계를 댔었지만 정작 23일 당일에도 오전 내내 비가 왔다.

그날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고까지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4월 10일 대정부질문에서 공무원들이 혈세 낭비를 빗대어

남근석 문제를 거론했던 강명순 의원은 그 다음날 골방기도회에서 “사무총장님이 그러는데 그렇게 큰 것 말고 작은 것이

여덟 개나 더 국회 안에 있데! 박계동 사무총장만 알고 있어.

돌이 치워지면 화를 입을까봐 무서워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뒤쪽에 있던 불상을 제거하려 했지만

결국 제거하지 못했다. 비록 돌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매우 불쾌하고 부정적인 일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법을 제정하는 곳에 이런 남근석이 8개나 더 있다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샤머니즘에 짓눌린 국회의사당이 한국의 현주소다.

 

 

 

 

   
▲ 헌정관으로 옮겨진 남근석이 기념비로 재탄생되어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있는 강명순 의원. 둥근돌 중 글씨가 새겨진 돌만 앞으로 빼내어 놓고 나머지 한 개를 설치 하지 않아 남근 상징을 없애 버렸다.

식음을 전패하고 시위를 하는 국회의원들의 단식투쟁의 실패 이유는

배고픔보다는 밤마다 출몰하는 국회의사당의 여성 귀신들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단식투쟁을한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본

결과 어두컴컴한 국회의사당은 유동 인구도 없으며 밤에는 어두워

실제로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시키고 있다. 이때 단식투댕으로 인한

기력쇠퇴의 이유인지 국회의원들은 귀신과 같은 헛것을 많이 보고

두려움을 느껴 단식투쟁을 포기한다고 한다.

  

국회의사당은 여의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문헌에 따르면

이곳은 '양말산' 즉 말을 키우는 곳으로서 활용하였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대동지지'는 목장으로서 조선시대 중요한 역활을하고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이러한 옛문서에도 나타나지 않은 장소 활용 내용이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궁녀들의 공동 묘지터와 화장터였다는 것이다.

몸이 안좋은 궁녀는 궁안에서 죽으면 안된다는 법도에 따라

궁밖으로 퇴출됬고 그로 인해 사망하게 되면 남대문이 아닌 시구문을 통해

시체를 여의도 즉 국회의사당이 있는 장소에 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유명 풍수 지리가들은

여의도는 여인들의 한이 서린 음기가 아주 강한 땅으로 평가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얘기로 음기가 강한곳에 또 건축적 문제점이 있었다.

 





 국회의사당의 건축물 형태는 직사각형에 돔을 씌운 형태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전통 상여가마와 비슷한 형태로 죽은자의 원한을 더 산다는 소리이다.

이에 정부는 궁녀들의 원한을 무마시키기 위해

2008년 음기를 중화시키기 위한 양기를 형상하는 남근석을

회의사당에 60주념 기념비로 세우면서

국회의사당의 귀신들은 사라졌다고 한다.

이 남근석은 국가의 위상을 떨어뜨린다 하여

앞마당에 있던 기념비를 뒷마당으로 옮겨 지금까지 있다고 한다.

 

국회 내 우뚝 솟은 '남근석' 을 아시나요?"

입력: 2014.08.08 11:12 / 수정: 2014.08.11 09:52

 

국회의사당 자리는 조선시대 궁녀들의 화장터와 공동묘지였다. 국회에 처녀 귀신이 출몰한다는 괴담도 이 때문인 것으로 풍수지리학자들은 보고 있다. 국회사무처는 음기를 누르기 위해 2008년 5월 18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65톤짜리 거대 남근석을 세워 여인들의 한을 달랬다. 국회 남근석의 앞모습은 평범한 표지석같지만 옆 모습을 보면 남성의 성기 모양새(사진은 옆 모습)를 띠고 있다. /국회=고수정 기자
국회의사당 자리는 조선시대 궁녀들의 화장터와 공동묘지였다. 국회에 처녀 귀신이 출몰한다는 괴담도 이 때문인 것으로 풍수지리학자들은 보고 있다. 국회사무처는 음기를 누르기 위해 2008년 5월 18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65톤짜리 거대 남근석을 세워 여인들의 한을 달랬다. 국회 남근석의 앞모습은 평범한 표지석같지만 옆 모습을 보면 남성의 성기 모양새(사진은 옆 모습)를 띠고 있다. /국회=고수정 기자

[더팩트 ㅣ 고수정 기자] "국회의사당 자리는 옛날에 '양말산'이라 불렸는데, 양말산은 조선시대 궁녀들의 화장터와 공동묘지였데. 그래서인지 국회는 처녀귀신이 자주 출몰한데. 그래서 처녀귀신의 원혼을 달래기위해 국회가 '남근석'을 세웠다고 하던데."

민의의 전당, 국회 내에서도 '처녀 귀신' '의원실 괴담'은 매년 여름이면 국회 관계자들 입에 오르내린다. 진위 여부는 둘째치고 '국회맨'들도 한 번쯤은 '묘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무더운 여름을 식히는 것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8년 5월 처음 알려진 '국회 귀신 괴담'의 전말은 대략 이렇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가 한창이던 2008년 5월 14일 새벽 2시쯤, 비서관 A 씨는 국회 의원회관 7층의 한 의원실에서 야근 중이었다. 서류와 책자 등을 정리하던 그는 피곤을 이기지 못해 의자에 기대 잠시 눈을 붙였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A 씨는 인기척과 함께 낯선 목소리를 들었다. "집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 번쩍 눈을 뜬 A 씨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인이 책상 사이를 지나 사무실 안에 있는 의원 집무실로 사라지는 모습을 봤다. A 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은 모두 퇴근했고 의원실에는 자기 혼자만 있었기 때문이다. A씨가 바로 집무실로 들어갔지만 사람은 커녕 시중말로 개미 한마리 조차 없었다. 업무에 지친 A 씨가 환청과 환영을 듣고 보았던걸까.

이때부터 시작된 '국회 귀신 괴담'은 국회 직원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이 '귀신 이야기'는 심심찮게 회자된다. 국회 일각에서는 18대 국회 개원(2008년 5월 30일)을 앞두고 국회 사무처가 본청 뒤편에 65톤짜리 거대 남근석을 세운 것도 '양말산 여인'들의 한을 달래기 위해 비롯됐다는 '확인하기 힘든'말도 나돈다. (▼ 아래 영상 참조)

현재 이 남근석 전면(오른쪽)에는 國民과 함께하는 民意의 殿堂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표지석과 함께 국회 본청 앞마당에 세워진 지 1년 만인 2009년 5월 23일 이미지 실추를 염려한 당시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이 헌정기념관 앞으로 옮겼다. /국회=고수정 기자
현재 이 남근석 전면(오른쪽)에는 '國民과 함께하는 民意의 殿堂'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표지석과 함께 국회 본청 앞마당에 세워진 지 1년 만인 2009년 5월 23일 이미지 실추를 염려한 당시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이 헌정기념관 앞으로 옮겼다. /국회=고수정 기자

현재 이 남근석은 국회 헌정기념관 옆으로 옮겨졌다. '국회에 남근석이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이미지 실추를 염려한 당시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이 이전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예산 2억1000만원을 들여 제작한 이 거석은 세워진 지 1년 만인 2009년 5월 23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박상근 풍수디자인연구소장은 6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국회가 들어선 곳은 양말산 자리여서 음기가 세다는 것은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음양의 조화를 위해 국회가 남근석을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남근석의 앞 모습을 보면 평범한 표지석같다. 그러나 옆 모습을 보면 남성의 성기 모양을 띠고 있다. 이 남근석은 국회내 명물 아닌 명물로 입소문이 돌면서 국회 일반 관람객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다는 게 관계자들 전언이다. 남근석이 우뚝 솟은 다음부터는 '처녀 귀신 출몰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국회에는 남근석과 관련된 '귀신 괴담' 외에도 의원실 호수와 얽힌 괴담도 존재한다.

입주했다 하면 불운을 겪는 것으로 유명한 방이 하나 있다. 의원회관 '6△△'호다. '6△△호 괴담'은 의원뿐 아니라 보좌진,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새정치연합의 한 보좌관은 "그 소문은 기자들이 만든 것으로 안다. 의원들이 많이 바뀐 방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 괴담은 당시 16대 새천년민주당 박주선(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사연부터 시작됐다. 그는 2003년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한테서 3~4차례에 걸쳐 2억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임기 5개월을 앞두고 방을 나갔다. 박 의원은 나중에는 무죄판결을 받았고, 18대, 19대까지 3선의 고지를 밟았다.

방을 떠난 후 다음 총선에서 새로 입주한 17대 이철우 열린우리당 전 의원, 18대 홍장표 전 친박연대 의원도 잇따라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에 의원직을 잃었다. 세 의원이 잇따라 의도치 않게 방을 떠나면서 '들어갔다 하면 주인이 바뀌는 방'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국회 의원회관 6△△호에 입주한 의원들이 중도에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거나 의원직 상실 위기에 놓였다가 무죄를 판결받는 등 불운의 방으로 유명하다.  /고수정 기자, 더팩트 DB, 서울신문 제공, 전정희 홈페이지
국회 의원회관 '6△△'호에 입주한 의원들이 중도에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거나 의원직 상실 위기에 놓였다가 무죄를 판결받는 등 '불운의 방'으로 유명하다. /고수정 기자, 더팩트 DB, 서울신문 제공, 전정희 홈페이지

현재 '6△△'호의 주인은 새정치연합 전정희 의원이다.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기자들에게 금품을 건네고, 재산 내용 축소 신고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지난해 5월 9일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현재는 활발히 의정활동 중이다.

박주선 의원은 '6△△호 괴담'에 대해 5일 <더팩트>와 전화통화에서 "당시 검찰이 검찰권을 남용해서 나를 희생시켰던 사건이고 나중에 무죄가 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는데 불운의 시작이 왜 나라고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선거법 위반 등으로 들락날락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믿느냐. '불운의 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정희 의원은 6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며 말문을 닫았다.

'불운의 방'으로 통하는 곳은 한 곳 더 있다. '444'호다. 이곳은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16대 김낙기 전 의원과 17대 정종복 전 의원이 이곳에서 살림을 꾸렸지만, 다음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러나 '444'호는 19대 국회 출범과 함께 의원회관이 리모델링 되고, 제2의원회관이 신축되면서 사라졌다.

국회 의원회관 시설계획과 담당자가 휴가 중이라 이유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숫자 4는 죽음을 뜻하는 '사(死)'와 발음이 같아 예부터 좋지 않은 숫자로 꼽힌다. 건물에 4층이 없거나, 층 혹은 엘리베이터에 4층을 'Four'의 첫 자인 'F'로 표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444호'가 사라진 것도 같은 의미에서 비롯됐다고 의원회관 이용자들은 유추한다.

 

◆ 다음은 새정치연합 김영환 의원실에서 제작한 국회 귀신괴담 UCC.

 

[여의도국회 40년]이런 것도 있다니..

 

남근석·박근혜 나무·비밀통로..

정환보·김진우 기자 입력 2015.08.30. 11:27 수정 2015.08.31. 09:17

‘여의도 국회’가 불혹(不惑·마흔 살)을 맞는다.

국회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40주년을 맞는 다음달 1일 ‘국민초청 기념음악회’를 열고 ‘국회의원 단체 기념사진’도 촬영할 계획이다.

1975년 9월1일 준공된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원자재·자본 조달, 설계 등 전 과정을 우리 힘으로 해낸 아시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의사당이다.

의사당을 떠받치는 24개의 기둥은 1년 24절기 내내 국정에 진력하라는 의미다.

본회의장 천장 조명은 365개로 알려져 있는데 1년 365일 내내 일하라는 뜻이다.

국회의사당에는 이밖에도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비사들이 꽤 숨어있다.

국회의사당에 숨겨진 흥미로운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여다 보자.

1969년 7월에 착공, 연건평 2만4680평 지하2층, 지상6층 석조 돔 건물로 총 공사비 135억원(1975년 당시)이 든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준공된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음기 누르는 7m 남근석은 어디에?

2008년 4월 국회 사무처는 국회 개원 60주년을 맞아 의사당 후문 앞에 ‘국민과 함께하는 민의의 전당’이란 문구가 새겨진 간판석을 세웠다.

높이가 무려 7m에 달한다.

하단 폭은 2.6m, 상단 폭 2.2m이고, 무게는 68t이 넘는 초대형 비석이다.

하지만 이 간판석은 ‘남근석’을 닮은 모양 때문에 입방아에 올랐다.

“여의도는 조선 시대 궁녀들의 화장터로 음기가 센 곳이어서 정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 음기를 누르기 위해 남근석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국회 내 남근석은 음기를 누르는 것이 아닌, 배를 묶어놓는 ‘닻’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는 이설도 나왔다.

여의도의 형상이 배가 떠나가는 행주(行舟)이기 때문에, 배가 풍랑을 만나 조난을 겪듯 정치권이 시끄럽다는 게 한 풍수학자의 해석이었다.

이 거대한 비석을 닻으로 삼아 ‘여의도 배’를 떠나니지 못하도록 하자는 뜻으로 거석(巨石)을 세워놓았다는 설명이다.

아무튼 2억1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간 이 거석은 세워진 지 1년 만에 철거돼 인적이 드문 헌정기념관 뒤 공터로 옮겨졌다.

17대 국회에서 이 간판석을 설치했던 김태랑 사무총장은 열린우리당 출신이었다.

18대 국회 들어 사무총장은 한나라당 출신 박계동 전 의원이 맡았다.

간판석을 치운 건 박계동 총장이었다.

의회 권력이 바뀌자 간판석의 운명도 바뀐 것이다.

■기다림의 아이콘 ‘박근혜송(松)’

국회 정문 주변에는 ‘기다림의 나무’로 불리는 소나무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서울 염창동 당사에 심었다가

2008년 국회의사당 경내로 옮겨진 소나무/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4년 서울 염창동 당사 입구에 앞서 84일간의 천막당사 시절을 잊지 말고 2007년 대선 승리를 다짐하는 뜻에서 ‘기다림 2007’이라는 이름을 짓고 식수를 한 것이다.

2008년 한나라당이 여의도로 당사를 옮기면서 자리를 찾지 못해 국회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국회 의원회관 동산에 심었다가, 제2의원회관 건립으로 역대 국회의장, 사무총장들의 기념식수와 함께 현재의 자리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비긋기’용 비밀통로도 있다?

국회에는 지하 비밀통로가 있다.

본회의가 열리는 의사당에서 시작돼 왼쪽에 위치한 의원회관과 오른쪽에 위치한 도서관을 연결하는 지하 통로다.

‘T자’를 거꾸로 한 형태다.

1984년 국회도서관을 신축할 때 설계됐다.

길이는 460m에 이른다.

비상시 대피장소로 만들어졌지만 비가 올 때 비를 맞지 않고 이동하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벽면에는 역대 국회의원들이 직접 쓰거나 기증한 서예 작품과 사진들이 걸려 있다.

일반인의 이용은 제한돼 있다.

■동물원도 있었다는데…

한때 국회 후생관과 온실 사이에는 ‘미니동물원’이 있었다.

일종의 사육장인데 닭은 물론 사슴과 꿩까지 길렀다.

그런데 18대 국회 때 국회 사무처 국정감사에서 이 사육장이 문제가 됐다.

사무처가 사슴 녹용을 특정업체에 주기로 수의계약한 사실이 불거진 것이다.

특혜 시비가 일면서 결국 사육장은 없어졌다.

졸지에 집을 잃은 동물들은 서울대공원으로 보내졌다.

 

"집에 들어가서 자!"…국회의사당, 궁녀 묘지터 괴담 '오싹'

  • 뉴시스  2010.09.14 06:32

국회 면회실앞 국회개원60주년 기념비
최근 들어 여성 국회의원들의 활약이 눈에 띄자, 여의도 정가에서는 국회의사당의 풍수지리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곳의 풍수지리 덕에 기가 세고 힘 있는 여성 정치인들이 활약할 수 있는 반면, 이 때문에 여성 정치인이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떠도는 한나라당 A여성 의원의 이혼설, B여성 의원의 이혼 준비설 등도 풍수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영향을 미쳤다.

국회의사당은 1948년 제헌국회 당시 종로구 세종로 중앙청회의실에서 개원됐다. 이후 6·25전쟁을 거치며 대구와 부산 등지의 임시회의실을 전전해야 했고, 이후에도 국회는 태평로 시민회관별관· 대한공론사·구 해군본부(삼중정) 등으로 끊임 없이 이전해야 했다.

그러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1969년 7월17일 제헌절에 여의도의 현 부지에서 착공돼1975년 8월15일 완공됐다. 옛 문헌에 따르면 국회가 위치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는 '양말산'(말과 말을 키우는 산)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대동지지'에는 '여의도는 밤섬 서쪽에 있는데, 맑은 모랫벌이 육지에 닿아 있다. 여기에 전성서(典性署)의 외고(外庫)가 있어서 양을 놓아 기른다'고 적혀 있다.

'동국여지비고'도 '나의주(여의도)는 예전에 목장이 있어서 사축서와 전성서의 관원을 보냈으나 이를 폐지하였다. 지금(고종 시절)은 사축서의 양 50마리, 염소 60마리 만을 놓아기른다'고 밝혀, 여의도가 조선시대의 중요한 목장이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옛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 또 다른 설도 있다. 양말산이 조선시대 궁녀들의 공동 묘지터 또는 화장터였다는 것이다.

궁녀가 궁궐안에서 죽으면 안 된다는 법도에 따라 죽을 때가 된 궁녀들은 궁을 나가야 했고 궁내에서 궁녀가 죽었을 경우에는 남대문이 아닌 시구문을 통해 시체를 도성 밖에 버렸는데, 그 장소가 여의도였다는 것이다.

일부 풍수지리가들은 이런 설을 들며 여의도를 여인들의 한이 서린 음기가 강한 땅으로 평가한다. 이 때문인지 국회에는 여자귀신을 봤다는 괴담이 심심찮게 떠돌았다.

18대 총선 직후인 2008년 5월에는 한 국회의원 보좌관이 의원회관 7층 사무실에서 철야근무를 하다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 귀신으로 부터 "집에 들어가서 자!" 라는 말을 들었다는 괴담이 퍼져 여의도가 들썩거리기도 했다.

국회사무처가 2008년 4월30일 국회개원 60주년 기념비로 세웠던 돌이 남근석이란 논란에 휘말리면서 국회 본청 후문에서 인적이 드문 헌정기념관 뒤 공터로 옮겨졌던 일도 유명하다.

높이 7m, 하단 폭 2.6m, 상단 폭 2.2m에 무게 68t의 이 돌은 17대 국회 당시 사무총장을 지낸 김태랑씨가 국회에 온갖 추문 등이 끊이지 않자, 평소 알고 지내던 풍수지리학자로부터 음기를 눌러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남근석 모음

국회의사당 남근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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