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과 관련이 있는 질병
2006년 11월 어느 날, 집으로 배당된 조간신문을 뒤적이던 나는 Y비뇨기과에서 게재한 "전립선 비대증, 하루만에 치료"라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읽어보니 전립선 비대증의 주 증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소변이 자주 마렵다/소변을 보고도 개운치 않다/밤에 소변을 보러 자주 깬다/소변을 참는 것이 어렵다/소변을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소변 굵기가 가늘어지고 찔끔거린다."
전립선은 고환과 방광사이에 달려 있는 밤톨만한 크기로 음경, 고환과 더불어 남성의 3대 성 기관이다. 따라서 전립선은 배뇨조절과 사정, 발기의 사령탑 역할을 한다. 전립선 가운데는 구멍이 뚫려 있어 이 길로 소변과 정액이 지나간다.
전립선 비대증의 원인은 유전적 인자, 체질, 영양, 동맥경화, 인종간 차이 등 여러 가지로 거론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는 질병이다. 그러나 가장 큰 유발인자는 연령증가로 인한 노화 및 남성호르몬의 분비저하라고 한다. 따라서 전립선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조금씩 커지게 된다.
이렇게 커진 전립선은 점차 방광의 밑에서 소변이 나오는 요도를 누르게 되어 소변을 보기가 힘들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전립선비대증이다. 이 광고를 보자 상당한 부분이 나의 증세와 유사하여 검사를 한번 받아보기로 작정하고 광고를 오려 놓았다. 그렇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언 6개월이 지난 금년 5월이 되었다.
그 전에는 저녁에 한번 잠이 들면 다음날 새벽까지 깊은 잠을 자면서 중간에 소변이 마려워 깨는 법이 절대로 없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소변 때문에 잠을 깨는 현상이 자주 반복되었다. 그리고 소변이 처음에는 잘 나오다가도 중간이후부터는 찔끔거리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소변의 굵기가 가늘어지는 등의 증상이 계속되자 드디어 병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사진출처 : http://healthkorea.net/HealthInfo/?kspid=HI000299&disease=138>
전립선비대증 검사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비뇨기과를 찾은 것은 처음이어서 다소 긴장되었다. 담당의사는 남성의 나이 50대가 되면 대부분 이런 증세를 호소한다고 하면서 검사를 해 보아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하였다. 먼저 하복부에 초음파 검사를 하고 다음에는 항문검사를 하였다. 의사는 항문으로 봉을 주입하면 좀 불편할 것이라고 하였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약 3년 전 맹장염(충수염) 진단을 위한 CT촬영 시 많은 액체를 항문으로 주입할 당시의 불편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수술실로 옮겨 요도감사를 하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검사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항생제반응 검사를 위해 피부에 맞은 주사는 따끔하기가 이를 데 없었고, 세 차례나 요도(尿道)로 호스를 주입하여 검사할 때의 그 불쾌함은 필설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먼저 굵은 호스를 주입하여 잔뇨를 배출하고, 다음에는 약간 가는 호스로 물을 주입하여 방광의 기능을 검사하며, 마지막으로 내시경을 주입하여 사진을 찍고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피수검자의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맨 처음 굵은 호스를 요도로 주입할 때 저절로 큰 비명이 나왔는데, 의사는 밖의 사람이 들으면 사람을 잡는 줄로 알겠다면서 입을 벌린 채 소리를 지르지 말도록 당부하였다.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의사는 자꾸만 나에게 큰기침을 하게 하고 말을 시켰는데, 나는 꼭 이런 방식의 검사밖에 없느냐고 묻기도 하고, 또 이 증세를 사전에 미리 예방할 수 방법이 없느냐고 질문하여 음식을 조심해야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였다.
검사결과 전립선이 비대해졌음을 확인하고 5일 후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였다. 검사 후 며칠 동안은 소변을 볼 때마다 통증이 있었고 또 요도로 약간의 피가 나와 여성용 기저귀를 차고 생활해야만 했다.
전립선비대증 수술
드디어 수술의 날이 밝았다. 사무실로 출근하여 기본적인 일을 처리하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피검사를 다시 하고 또 혈액성분이 포함된 링게르주사를 꽂았는데 이는 수술 중 출혈에 대비한 보안조치라고 하였다.
수술실로 들어가니 마취과 전문의가 나에게 곱사등이처럼 허리를 꾸부리고 옆으로 누우라고 한 후 척추에 하반신 마취주사를 놓았다. 서서히 두 발과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는데 이는 마취가 정상적으로 되었다는 증거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수술 중에는 잠을 재워준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 후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의식을 되찾고 보니 벌써 수술이 끝나고 나는 회복실에 누워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몸을 움직여 보아도 아무런 통증도 없어 맹장제거수술보다는 훨씬 고통이 덜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잠은 이미 깨었지만 아직까지 마취가 덜 풀려있었던 것이다.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자 요도가 불편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도 속으로 고무줄을 주입하여 자동적으로 소변이 배설되도록 장치를 해 놓았으니 소변이 잔뜩 마려운 느낌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간호원이 들어와 오줌주머니에 고여있는 깨끗한 소변을 보고는 수술이 아주 잘 되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영양보충을 위해 포도당주사도 걸려 있었고 수술 후 또 피검사를 하였다.
회복실은 2인용이었다. 내가 누워 있는 사이에 다른 환자 한 명이 들어와 주사를 맞고는 대기하였다. 약간 키가 작고 똥똥한 의사가 와서는 그 환자에게 수술실로 가자고 하였다. 이 의사는 아까 나를 수술실로 안내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는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반전시키려고 농담을 꺼냈다.
"환자들이 선생님만 보면 염라대왕이라고 생각하겠어요!"
"무슨 말씀입니까?"
"환자들을 수술실로 데려가니까요!"
"제가 얼마나 환자들을 친절하게 안내하는데 그러세요."
"허 허 허."
내가 마취가 완전히 풀릴 때를 기다려 회복실에 있는 사이에 이 환자는 내시경검사를 하고 왔는데 사연을 들어보니 5개월 전에 수술을 했으나 다시금 소변을 보기가 어려워 이번에 재검사를 받으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술을 받는 대신 약물치료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증세가 심하면 약물치료로는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였더니 이 사람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시원하게 소변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환자는 수술 후 의사의 지시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임을 확인하였다. 병원에서 나누어준 주의사항에 의하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절대로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하였지만 그는 수술 후 3주만에 회식을 하며 과음을 했다고 한다. 또 과로나 심한 운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점을 무시하고 최근에는 필립핀으로 골프투어를 다녀왔다고 하였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의사는 나에게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두 차례 시켰다. 나는 등산으로 하체가 튼튼하여 문제가 없다고 하였더니 다리가 튼튼한 것하고 이것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마취가 덜 풀린 상태에서 나가면 쓰러질 우려가 있다고 하였다.
마취가 완전히 풀린 것을 확인한 의사의 지시에 따라 병원 문을 나서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는 동안 아랫도리의 통증으로 인하여 차내에 앉아 있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집에 와서 아내가 사다주는 죽으로 저녁을 먹고는 자리에 누웠지만 그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잠이라도 푹 자면 나으련만 소변이 무척 마려운 느낌이 드니 1시간도 채 못 자고 깨기가 일쑤였다. 다행히도 수술을 받은 지 약 12시간이 경과한 자정이 지나자 소변이 마려운 증세가 점점 완화되기 시작하여 견딜 만 하였지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긴긴 밤을 뒤척이어만 했다.
수술과 오줌 줄
요도에 매단 오줌 줄이 꼬이지 않도록 하려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다행히도 이튿날 정오경 대변이 저절로 나와 한시름을 덜었다. 평소 매일 이른 아침 식사를 한 후에는 꼬박꼬박 변을 보았으므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만약 긴장한 탓에 변비증세가 있을 경우 의사는 이를 완화하기 위한 약을 먹도록 권유했던 것이다.
밤의 시간만 긴 것이 아니라 낮도 길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침 부처님 오신날(목)로 휴일이어서 다행이었고 서울지방에도 오후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대한산악연맹회장을 역임한 김영도 옹이 지은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수문출판사)라는 제목의 책을 꺼냈다. 며칠 전 구입했지만 시간이 없어 두었던 것이다.
김옹는 현재 83세의 고령(1924년 생)임에도 불구하고 학도병으로 6.25전투에 참여하여 5년 동안 군에 복무한 일, 고등하교 영어교사를 하던 중 완전히 타의로 민주공화당에 들어가 유정회 국회의원까지 지낸 일, 아무도 관심이 없던 때 대한산악연맹 에베레스트등반대장으로 이를 정복한 일 등 지난 세월을 유려한 문장으로 회고하고 있다.
수술 후 무엇보다도 하루 2리터의 물을 나시는 것이 고역이었다. 산행을 다니다보면 특히 하절기에는 불과 5∼6시간만에 이 정도의 물을 마시기는 식은 죽 먹기이다. 그러나 오줌 줄을 매달고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은 채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서 많은 물을 마시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 줄 정말 몰랐다.
수술 후 귀가 시부터는 오줌에 피가 섞여 나왔으나 이틀 밤이 지나자 소변의 색깔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나니 그래도 몸이 좀 개운해 지는 기분이었지만 불면증은 계속되었다. 그 다음날(금요일)은 직장을 하루 쉬면서 안정을 취했다.
오줌 줄 제거 후의 회복기
만 3일째 되던 날(토요일) 아들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병원을 가기 위해 양화교 인공폭포방향에서 올림픽 대로에 들어섰다. 잠실방향으로 가는 도로는 완전히 주차장으로 변해 움직일 줄을 몰랐다. 머리가 빠개지는 듯 아팠지만 두통약도 마실 물도 준비하지 못해 참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뒷좌석에 누웠더니 조금은 진정되는 듯 했다. 주 5일제 시행으로 토요일 나들이 차량이 엄청나게 불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지체의 원인은 한강대교 밑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오줌 줄을 제거하는 작업은 이외로 간단했다. 수술실이 아닌 의사의 사무실에 비치된 침상 위에서 줄을 뽑았다. 만 3일간 차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줄을 제거하고 나니 아랫도리가 한결 시원하였다. 귀가하면서 아들과 함께 삼계탕 집에 들러 점심을 먹었는데 두통이 계속되어 도저히 음식 맛을 모를 지경이었다. 아까 의사로부터 오줌 줄 제거 후에는 진통제 주사를 맞으므로 참고 기다려보라는 말을 듣고 약을 먹지 않은 게 실수였다.
매일 저녁 약 20분간 반신욕을 하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목욕을 하고 나니 일어설 기운조차 없었다. 참고로 반신욕을 하면 체내의 수분이 증발하므로 반드시 충분히 물을 마신 후 실시해야 한다. 수술 후 약 3일 동안 운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기만 했더니 몸의 원기가 모조리 빠져버렸나 보다. 체중이 벌써 3kg 감소되었다. 화타 김영길 선생이 주장하는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는 말이 다시금 실감났다. 하지만 정상적인 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오줌 줄을 제거하고 나면 오줌이 시원하게 나오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굵어진 전립선을 레이저로 긁어내었지만 전립선 내부는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소변을 보면서 약간 힘을 주었더니 핏덩어리 같은 가느다란 이물질 두 개가 빠지는 것이었다.
월요일 사무실로 출근하였다. 자리에 오래 앉아 있기는 다소 불편했지만 점심은 수술 후 처음으로 입맛이 되돌아와 맛있게 먹었다.
2주가 지난 후 의원에 들러 소변량과 방뇨시간을 점검 받았다. 수술 후 약 3주 동안은 요도 끝에서 피가 조금씩 나와 팬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여성용 기저귀를 계속 차고 있어야 했다. 불편하던 소변도 3주가 지나자 겨우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였지만 소변이 정상으로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1개월 후 다시 방문하여 의사를 만났는데 수술환자의 약 30%정도는 정액이 방광으로 들어가 사정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술 전 이런 후유증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선뜻 수술에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성급한 수술
수술을 받은 지 40일이 경과되어도 의자에 앉아 있으면 수술부위가 압박을 받아 불편하여 수시로 일어나 서성대기를 반복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소변의 불편함이 해소되지 않는데 있었다. 다시 의사를 찾아가서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다른 부문의 수술은 잘 되었는데 요도 끝 부분이 좀 막혀 있다고 하면서 다시 기구를 집어 넣어 이를 확장하였다. 의사는 나에게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의례적인 인사를 하였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로부터 약 5일이 지나도 오히려 요도를 건드리기 전 보다 훨씬 불편하고 소변을 보기가 매우 힘들었다. 의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기구로 만진 요도가 부었기 때문이니 며칠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10일이 지나자 통증도 완화되고 소변도 비교적 시원하게 배출되었다.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보니 성급하게 수술을 받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뇌리를 스쳤다. 수술 후 이종구 박사가 지은 "전립선을 한방에"(선미디어 刊, 2006)라는 책을 구입해 읽어보니 과거에는 증상이 심할 경우 수술부터 했지만 최근엔 환자 10명중 7명은 먼저 약물로 치료한다고 씌어 있기 때문이다. 즉 수술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수술은 몇 시간 동안 소변을 보지 못해 고생을 하는 경우에만 시행한다고 한다.
책을 보니 나의 증상은 수술을 해야할 정도로 심각한 편이 아니라 나이에 따른 일반적인 증상이었다. 다만 약물치료는 비대증 증상을 20∼30% 정도 완화시킬 뿐, 완치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약물은 거의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약물로는 도저히 치료가 안 되는 중증일 경우 수술은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수술후유증인 정액의 역류현상도 약 3년이 경과되면 정상으로 회복된다고 한다.
에필로그
밤톨만한 크기의 전립선이 비대해지는 증상은 우리나라 40세 이상 중년남성 3명중 1명이 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50대 이상은 2명 중 1명은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라고 한다.
전립선 비대증은 본인이 증세를 느끼기 시작할 때쯤이면 병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침묵의 병"으로 불린다. 증상이 심해지면 소변을 보지 못해 콩팥으로 역류하게 되어 신장까지 나빠진다.
위에 소개한 책을 꼼꼼히 읽어보니 잔뇨 측정검사의 경우 과거에는 요도로 관을 삽입하여 나오는 소변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검사에 의한 통증과 요로감염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어 현재는 초음파로 측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나에 대한 검사를 하면서 의사는 초음파 검사와 관을 주입하는 구식방법을 동시에 시행하였으니 정확한 진단을 위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과는 사뭇 다르므로 의사가 원망스러웠고 나도 사전 지식이 너무 부족하였다. 병원을 찾기 전 이 책을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 병은 택시기사와 사무직 등 장시간 앉아서 생활하거나 자전거 타기와 승마 등 전립선을 압박하는 운동이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한다. 특히 나이를 먹음에 따라 발병하므로 중년의 남성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런 병에 걸릴 수 있음을 알아야한다.
전립선비대증과 유사한 증상으로 전립선염과 전립선암이 있다. 전립선염은 전립선에 염증이 생긴 것이고, 전립선암은 전립선에 혹이 생긴 것으로 전립선비대증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 유사한 증상이 있을 경우 최신 시설을 구비하고 유능한 의료진이 있는 믿을 만한 병·의원을 찾아가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독자여러분은 필자와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고 증상이 있을 경우 잘 대처하기를 바란다.
<사진자료 : 인터넷>
이제 수술을 받은 지 약 70일이 지났다. 소변은 수술전보다도 다소 개선되었지만 오줌이 마려우면 거의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긁어낸 수술부위가 수술전의 상태로 회복하는데는 약 3개월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하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전립선비대증은 함부로 수술 받을 병이 결코 아님을 다시금 강조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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