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風水)의 고향은 농촌이다. 풍수란 자연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2012년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90.1%. 전체 인구 5000만 명 중 4500만 명 이상이 인공 구조물이 가득한 도시에 산다는 얘기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아예 땅의 기운을 느끼기 어려운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풍수란 무엇일까. 땅 잘 쓴 덕에 언젠가는 복이 굴러들어올 거라 믿는 전근대적 미신인가.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풍수란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땅에 대한 깨달음과 자연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만든 삶의 지혜”라며 “현대인에게 여전히 유용하다”고 말한다. 풍수의 현대적 변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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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도시, 아니 아파트 풍수 보기를 처음 시도했다. 풍수의 재해석이 의미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이른바 신(新) 십승지(十勝地)다.
풍수에는 크게 두 줄기 유파가 있다. 산과 물 등 주변 경관을 보고 풍수를 헤아리는 형세론(形勢論)과 패철(佩鐵·지관이 쓰는 나침반)을 사용해 풍수를 가늠하는 이기론(理氣論)이다. 산이 많은 영남 지역엔 형세론자가 많고, 평야가 많은 호남엔 아무래도 이기론자가 많다고 한다. 江南通新은 형세론과 이기론의 전문가 5인에게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 단지 가운데 명당 10곳을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에 자문에 응해 준 전문가 5명 중 3명은 요구대로 10곳을 골랐고, 2명은 “명당이라 불릴 만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많지 않다”며 4곳만 알려 왔다.
아파트에서 풍수를 찾다
아파트 십승지를 묻기 전에 우선 아파트에 풍수를 적용할 수 있는지부터 물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통상적인 풍수지리학에서는 대략 5층까지만 땅의 기운을 받는다고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왜 하필 5층일까, 또 만약 이를 인정한다면 5층 이상의 고층집은 아파트가 자리 잡은 터의 풍수와는 무관한가. 아니, 거꾸로 같은 집터에 자리잡은 아파트라면 1층이든 40층이든 풍수가 똑같은 걸까. 이게 질문의 핵심이었다.
스스로를 형세론자에 가깝다고 평한 최 교수는 “사는 집뿐 아니라 집터 역시 풍수에 속하기 때문에 아파트 역시 당연히 풍수지리적 입장에서 볼 수 있다”며 “땅과 자연은 현대에 와서 인공 구조물 등 다른 것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통 풍수에서 땅 기운이 미치는 층수는 땅에 뿌리가 내린 나무가 자란 위치까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딱 몇 층까지 식으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며 “자생하는 나무가 자라는 높이만큼 땅의 기운을 받는 건 맞지만 풍수에선 땅의 기운만 보지 않는다”고 했다. “하늘의 기운도 있다”는 것이다.
형세와 이기를 모두 본다는 자칭 종합학파인 양만열 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00층이든 200층이든 풍수를 적용하는 데 달라질 게 없다”며 “오히려 고층은 햇빛을 많이 받아 양(陽)의 기운을 띤다”고 말했다. “고층 아파트를 과거 잣대로 교조적으로 재단할 게 아니라 현대 풍수지리에선 따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상대적으로 집값을 더 받는 소위 로열층은 14~15층 아파트의 7~8층이다. 땅의 기운이 미치는가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이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이기론에 중점을 둔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은 좀 다른 시각이었다. 그는 “우리는 전통적으로 저층에 사는 체질을 물려받았다”며 고층살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고 회장은 “지구가 거대한 자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땅에선 자석의 기운, 그러니까 지자기(地磁氣)가 나오는데, 지표면에서 4층 정도만 떨어져도 이 지자기가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사람은 땅으로부터 지자기를 충전받으며 살아야 하는데 고층 생활로 지자기 결핍증에 걸리면 불면증이나 우울증·두통에 시달린다는 주장이다. 그는 다만 “정말 좋은 터라면 고층도 좋은 기운을 받는다”고 말했다.
고층 아파트에 대한 판단은 형세론자와 이기론자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었다. 형세론자인 신현성 기풍수지리학회장도 “풍수적으로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고층에 살면 자리 덕을 보지 못한다”며 “풍수상 로열층은 3~5층”이라고 말했다.
신(新) 십승지(十勝地)
강남 지역은 명실상부한 서울의 중심지가 됐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산다. 그러나 풍수 전문가가 꼽는 명당은 여전히 강북 지역이 많았다. 박시익 명당건축사무소 대표는 “가장 좋은 기운을 받는 곳이 사대문 안”이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성북동과 한남동 등이 전형적인 명당”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민철 건국대 부동산아카데미 지도교수는 “강남은 조선시대에 한양에 속하지 않았지만 당대에도 터가 좋다며 사람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강남 속 명당은 어딜까.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전문가마다 땅과 아파트를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명당 아파트 단지는 대략 일치했다. 그중 한곳이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다. 고 회장과 양 교수, 그리고 김 교수는 모두 최고 명당으로 이곳을 꼽았다(표 참조). 최 전 교수는 압구정동을 꼽기는 했으나 현대아파트보다 한양아파트에 더 후한 점수를 줬다.
고 회장은 “압구정 현대아파트처럼 앞에 한강이 흐르면 재물운이 흐른다”고 했다. 양 교수도 “강남에서 가장 풍부한 부(富)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물은 풍수에서 재물을 뜻한다. 현대아파트는 한강이 S자로 굽어 흐르는 가운데 강 쪽으로 툭 튀어나온 돌출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한강 물이 휘감아 흐르는 이른바 금성수(金星水) 지역이자 득수형(得水形) 자리라는 것이다.
압구정동 가운데서도 왜 현대아파트냐에 대해 김 교수는 “압구정로와 논현로가 아파트 부지를 부채꼴 모양으로 감싸줘 지기(地氣)가 집결했다”고 말했다.
최 전 교수의 해석은 좀 다르다. 그는 줄곧 그의 책이나 강연에서 압구정동을 변기로 묘사한다. 아니, 명당이라더니 하필 더러운 변기라니. 다 이유가 있다. 땅을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청계동천이니 옥류동천이니 하는 발원지가 입이며 뚝섬 근처가 항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 건너 압구정동은 항문에서 나오는 변을 받는 변기란다.
최 전 교수는 “똥은 불결하지만 가치가 있다”며 “이런 입장에서 압구정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욕망의 배출구라는 것이다. 그는 “한때 압구정동은 사람들이 천민자본주의의 백화점으로 경멸하던 곳”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욕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똥이 중요한 자원(비료)이 되듯 천민자본주의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까지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원래 명당 조건 갖추지 못한 땅”
대치동 은마·미도아파트 자리도 풍수 전문가들이 명당으로 많이 언급했다. 최고 명당까지는 아니어도 3명이 명당으로 꼽았다. 대치동은 압구정동보다 더 흥미롭다.
압구정동은 조선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한명회가 정자를 지을 만큼 예로부터 터가 좋은 자리였다. 그러나 대치동은 다르다. 전문가들은 “대치동은 원래 명당 조건을 갖추지 못한 땅”이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대치(大峙)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원래 고개가 많았던 곳으로 사람 살기 적합한 터는 아니었다”며 “1970년대 강남 개발을 계기로 명당으로 발돋움했다”고 했다. 개발 과정에서 대치동 일대 고개를 다 밀어버리자 양채천이 감싸 안는 넓은 평지가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대치동을 “인간이 만든 명당의 사례”라고 말했다.
비슷한 곳에 위치한 은마아파트와 미도아파트의 지기는 어떠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미도아파트가 조금 더 낫다는 의견이 많다. 김 교수는 “이곳은 탄천과 양재천이 합류해 감싸고 흘러 재물이 풍족한 곳”이라며 “은마아파트는 양재천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휘문고 쪽에서 용이 들어와 머무는 자세이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좋은 지세”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최고 부자동네 중 하나로 꼽히는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어떨까. 타워팰리스 역시 3명이 명당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처음 1차만 들어섰을 땐 풍수에서 말하는 노풍살(露風殺·혼자 우뚝 솟은 탓에 바람을 혼자 맞아 좋은 기운을 흩어뜨리는 나쁜 기운)이 강해 그리 좋지 않았다”며 “대단지로 변모하면서 기운이 순화해 현재는 안정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도곡동 역시 인위적 명당으로 꼽았다. 그는 “양(陽)의 기운이 있어야 명당이 된다”며 “사람이 많이 사는 높은 건물은 양의 기운이 높아지기 때문에 명당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붙이면 그곳이 명당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사람마다 강북이냐 강남이냐, 압구정동이냐 대치동이냐를 두고 얼마든지 갑론을박할 수 있다. 그러나 최 전 교수는 “풍수 근본주의에 빠져 집착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대문 안이 아무리 명당이라고 해도 상업빌딩이 가득한 곳을 삶의 터전으로 좋다고 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했다.
그는 옛 풍수를 교조적으로 따르는 것도, 또 반대로 과학적·논리적으로 따지며 미신 취급하는 것도 모두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가 지금 사는 집을 고른 사연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지금 구로동의 한 아파트 1층에 산다. 이유를 물었더니 돈 때문이란다. 원하는 집이 비싸 싼 지금의 집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도 정을 줘야 나한테 오지 않나. 땅도 마찬가지다. 1층이 명당이 아니라고 할 게 아니라 장점을 찾으면 된다. 난 1층 집이 좀 어두우니 먼지가 안 보여 좋고, 엘리베이터 고장 걱정할 필요 없어 좋고, 불 나도 쉽게 피할 수 있어 좋고, 화단을 내 정원처럼 즐길 수 있어 좋다. 흠을 자꾸 잡으려 하면 명당을 찾기 어렵다. 땅에 무엇을 바라지 말고 땅에 정을 줘 명당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안혜리·유성운·조한대 기자
도움말=고제희·김민철
江南通新이 도시, 아니 아파트 풍수 보기를 처음 시도했다. 풍수의 재해석이 의미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이른바 신(新) 십승지(十勝地)다.
풍수에는 크게 두 줄기 유파가 있다. 산과 물 등 주변 경관을 보고 풍수를 헤아리는 형세론(形勢論)과 패철(佩鐵·지관이 쓰는 나침반)을 사용해 풍수를 가늠하는 이기론(理氣論)이다. 산이 많은 영남 지역엔 형세론자가 많고, 평야가 많은 호남엔 아무래도 이기론자가 많다고 한다. 江南通新은 형세론과 이기론의 전문가 5인에게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 단지 가운데 명당 10곳을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에 자문에 응해 준 전문가 5명 중 3명은 요구대로 10곳을 골랐고, 2명은 “명당이라 불릴 만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많지 않다”며 4곳만 알려 왔다.
아파트에서 풍수를 찾다
타워팰리스
스스로를 형세론자에 가깝다고 평한 최 교수는 “사는 집뿐 아니라 집터 역시 풍수에 속하기 때문에 아파트 역시 당연히 풍수지리적 입장에서 볼 수 있다”며 “땅과 자연은 현대에 와서 인공 구조물 등 다른 것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통 풍수에서 땅 기운이 미치는 층수는 땅에 뿌리가 내린 나무가 자란 위치까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딱 몇 층까지 식으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며 “자생하는 나무가 자라는 높이만큼 땅의 기운을 받는 건 맞지만 풍수에선 땅의 기운만 보지 않는다”고 했다. “하늘의 기운도 있다”는 것이다.
형세와 이기를 모두 본다는 자칭 종합학파인 양만열 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00층이든 200층이든 풍수를 적용하는 데 달라질 게 없다”며 “오히려 고층은 햇빛을 많이 받아 양(陽)의 기운을 띤다”고 말했다. “고층 아파트를 과거 잣대로 교조적으로 재단할 게 아니라 현대 풍수지리에선 따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상대적으로 집값을 더 받는 소위 로열층은 14~15층 아파트의 7~8층이다. 땅의 기운이 미치는가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이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이기론에 중점을 둔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은 좀 다른 시각이었다. 그는 “우리는 전통적으로 저층에 사는 체질을 물려받았다”며 고층살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고 회장은 “지구가 거대한 자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땅에선 자석의 기운, 그러니까 지자기(地磁氣)가 나오는데, 지표면에서 4층 정도만 떨어져도 이 지자기가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사람은 땅으로부터 지자기를 충전받으며 살아야 하는데 고층 생활로 지자기 결핍증에 걸리면 불면증이나 우울증·두통에 시달린다는 주장이다. 그는 다만 “정말 좋은 터라면 고층도 좋은 기운을 받는다”고 말했다.
고층 아파트에 대한 판단은 형세론자와 이기론자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었다. 형세론자인 신현성 기풍수지리학회장도 “풍수적으로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고층에 살면 자리 덕을 보지 못한다”며 “풍수상 로열층은 3~5층”이라고 말했다.
신(新) 십승지(十勝地)
강남 지역은 명실상부한 서울의 중심지가 됐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산다. 그러나 풍수 전문가가 꼽는 명당은 여전히 강북 지역이 많았다. 박시익 명당건축사무소 대표는 “가장 좋은 기운을 받는 곳이 사대문 안”이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성북동과 한남동 등이 전형적인 명당”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민철 건국대 부동산아카데미 지도교수는 “강남은 조선시대에 한양에 속하지 않았지만 당대에도 터가 좋다며 사람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강남 속 명당은 어딜까.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전문가마다 땅과 아파트를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명당 아파트 단지는 대략 일치했다. 그중 한곳이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다. 고 회장과 양 교수, 그리고 김 교수는 모두 최고 명당으로 이곳을 꼽았다(표 참조). 최 전 교수는 압구정동을 꼽기는 했으나 현대아파트보다 한양아파트에 더 후한 점수를 줬다.
고 회장은 “압구정 현대아파트처럼 앞에 한강이 흐르면 재물운이 흐른다”고 했다. 양 교수도 “강남에서 가장 풍부한 부(富)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물은 풍수에서 재물을 뜻한다. 현대아파트는 한강이 S자로 굽어 흐르는 가운데 강 쪽으로 툭 튀어나온 돌출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한강 물이 휘감아 흐르는 이른바 금성수(金星水) 지역이자 득수형(得水形) 자리라는 것이다.
압구정동 가운데서도 왜 현대아파트냐에 대해 김 교수는 “압구정로와 논현로가 아파트 부지를 부채꼴 모양으로 감싸줘 지기(地氣)가 집결했다”고 말했다.
최 전 교수의 해석은 좀 다르다. 그는 줄곧 그의 책이나 강연에서 압구정동을 변기로 묘사한다. 아니, 명당이라더니 하필 더러운 변기라니. 다 이유가 있다. 땅을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청계동천이니 옥류동천이니 하는 발원지가 입이며 뚝섬 근처가 항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 건너 압구정동은 항문에서 나오는 변을 받는 변기란다.
최 전 교수는 “똥은 불결하지만 가치가 있다”며 “이런 입장에서 압구정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욕망의 배출구라는 것이다. 그는 “한때 압구정동은 사람들이 천민자본주의의 백화점으로 경멸하던 곳”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욕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똥이 중요한 자원(비료)이 되듯 천민자본주의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까지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원래 명당 조건 갖추지 못한 땅”
대치동 은마·미도아파트 자리도 풍수 전문가들이 명당으로 많이 언급했다. 최고 명당까지는 아니어도 3명이 명당으로 꼽았다. 대치동은 압구정동보다 더 흥미롭다.
압구정동은 조선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한명회가 정자를 지을 만큼 예로부터 터가 좋은 자리였다. 그러나 대치동은 다르다. 전문가들은 “대치동은 원래 명당 조건을 갖추지 못한 땅”이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대치(大峙)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원래 고개가 많았던 곳으로 사람 살기 적합한 터는 아니었다”며 “1970년대 강남 개발을 계기로 명당으로 발돋움했다”고 했다. 개발 과정에서 대치동 일대 고개를 다 밀어버리자 양채천이 감싸 안는 넓은 평지가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대치동을 “인간이 만든 명당의 사례”라고 말했다.
비슷한 곳에 위치한 은마아파트와 미도아파트의 지기는 어떠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미도아파트가 조금 더 낫다는 의견이 많다. 김 교수는 “이곳은 탄천과 양재천이 합류해 감싸고 흘러 재물이 풍족한 곳”이라며 “은마아파트는 양재천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휘문고 쪽에서 용이 들어와 머무는 자세이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좋은 지세”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최고 부자동네 중 하나로 꼽히는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어떨까. 타워팰리스 역시 3명이 명당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처음 1차만 들어섰을 땐 풍수에서 말하는 노풍살(露風殺·혼자 우뚝 솟은 탓에 바람을 혼자 맞아 좋은 기운을 흩어뜨리는 나쁜 기운)이 강해 그리 좋지 않았다”며 “대단지로 변모하면서 기운이 순화해 현재는 안정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도곡동 역시 인위적 명당으로 꼽았다. 그는 “양(陽)의 기운이 있어야 명당이 된다”며 “사람이 많이 사는 높은 건물은 양의 기운이 높아지기 때문에 명당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붙이면 그곳이 명당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사람마다 강북이냐 강남이냐, 압구정동이냐 대치동이냐를 두고 얼마든지 갑론을박할 수 있다. 그러나 최 전 교수는 “풍수 근본주의에 빠져 집착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대문 안이 아무리 명당이라고 해도 상업빌딩이 가득한 곳을 삶의 터전으로 좋다고 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했다.
그는 옛 풍수를 교조적으로 따르는 것도, 또 반대로 과학적·논리적으로 따지며 미신 취급하는 것도 모두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가 지금 사는 집을 고른 사연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지금 구로동의 한 아파트 1층에 산다. 이유를 물었더니 돈 때문이란다. 원하는 집이 비싸 싼 지금의 집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도 정을 줘야 나한테 오지 않나. 땅도 마찬가지다. 1층이 명당이 아니라고 할 게 아니라 장점을 찾으면 된다. 난 1층 집이 좀 어두우니 먼지가 안 보여 좋고, 엘리베이터 고장 걱정할 필요 없어 좋고, 불 나도 쉽게 피할 수 있어 좋고, 화단을 내 정원처럼 즐길 수 있어 좋다. 흠을 자꾸 잡으려 하면 명당을 찾기 어렵다. 땅에 무엇을 바라지 말고 땅에 정을 줘 명당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안혜리·유성운·조한대 기자
도움말=고제희·김민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