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들이 대규모 극단적 선택?"..산림업계 최대 미스터리 풀릴까
윤희일 선임기자 입력 2022. 07. 20. 10:15 댓글 19개대나무는 일생에 딱 한 번 꽃을 피운다. 그리고 꽃을 피우고 나면 바로 죽는다.
대나무가 목숨을 걸고 피운 꽃은 그러나 번식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실이 되는 경우가 드물기도 하지만, 결실이 된 씨가 땅에 떨어져도 발아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대나무는 사실상 뿌리로 번식을 한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뿌리에서 죽순이 돋아나면서 새로운 대나무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남과 전남지역에서 지난 6월 이후 많은 대나무가 갑자기 꽃을 피우고 나서 죽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가 지난 6월 이후 경남 사천·하동·밀양 등 7개 시·군의 대나무 숲 7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2곳(43.8%)에서 꽃이 핀 흔적이 발견됐고, 이후 고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집단적으로 개화한 뒤 고사한 대나무 숲이 17곳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대상 숲의 23.3%에서 집단 개화 및 고사가 진행된 것이다.
국내 대나무 자생지 면적은 2만2042㏊로 전남(8183㏊)과 경남(7121㏊)지역에 집중돼 있다.
전체 대나무 자생지를 대상으로 조사를 하는 경우 개화 후 고사 피해지역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서정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장은
“이번 대나무의 집단 개화 및 고사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에는 그 영역이 넓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나무 숲의 집단 개화와 집단 고사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산림업계·산림학계의 최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대나무 집단 개화 및 고사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은 몇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오래된 대나무 숲의 뿌리가 서로 얽히면서 일어나는 ‘양분 부족 현상’이다. 대나무가 서 있는 토양의 양분이 부족해지면서 더 이상 성장을 이어가지 못하게 된 대나무가 본능적으로 마지막 꽃을 피우고 죽게 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정재엽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 연구사는 “대나무 숲에 대한 관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토양의 양분 부족이 심화됐고 이것이 개화 및 고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대나무 숲 소유자들이 대나무를 판매해 이익을 남기기 위해 숲을 열심히 관리했다”면서 “하지만, 최근 중국산 저가 대나무 제품이 많이 들어오고, 과거에는 대나무로 만들던 생활용품이 플라스틱으로 대체되면서 대나무 숲을 통한 수익이 현저하게 낮아지면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농촌지역 인구가 감소하면서 과거 집 주변에 조성됐던 대나무 숲이 아무런 관리도 받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것도 소나무 숲 부지의 영양 부족과 이에 따른 고사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올봄 이어진 극심한 가뭄 등 기후변화도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나무 숲이 많은 남부지역의 올 1~6월 강수량은 예년의 3~6% 수준에 그쳤다. 대나무는 보통 4~6월에 새로운 죽순을 땅 위로 올려보내 는 등 왕성한 성장을 하는데 이 시기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갑자기 개화 후 고사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극심한 한파가 대나무 숲의 고사를 일으킨 사례도 있다. 2020년과 2021년 겨울철의 극심한 한파 이후 충남 당진 일대와 울산 지역에서 대나무가 집단 고사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생한 대나무의 개화 후 고사는 한파에 의한 고사와는 그 원인과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이 꼽는 핵심적인 문제는 대나무 숲이 사실상 관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방치하는 경우 대나무의 개화 후 고사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에 국립산림과학원은 대나무 개화 및 고사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 위해 나섰다. 산림과학원은 지난 18일 전남 산림자원연구소에서 현장 토론회를 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정 연구사는 “사실 학계에서 대나무의 개화 기작(생물의 생리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기본 원리) 조차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정확한 연구를 통해 대나무의 개화 후 고사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