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부지 판 돈 10조원은 어디로 갔을까?…부실 책임 공방
이렇다 보니 한전의 재무 악화와 전기 요금 인상을 둘러싼 책임 공방도 확대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전 스스로 지난 5년간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이전 정부에서 경영을 엉망으로 해놓고 이제 와서 국민에게 부담을 돌린다는 주장이다.
기재부의 한 관료는 “한전이 2014년 현대차 쪽에 10조원에 판 서울 삼성동 본사 부지 매각 대금은
다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한전은 발전 자회사 6개와 민간 발전회사가 만든 전기를 사서 가정과 기업에 공급한다.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 이와 연동한 발전 연료비가 내려가고 전력 구매 비용도 줄어든다. 한전은 저렴하게 생산된 전기를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수익이 증가한다. 결국 에너지 가격과 전기 요금이 한전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지난해 부채비율이 8년 만에 다시 200%를 돌파한 것은 국제 유가가 올랐지만 전기요금은 동결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0년 초 배럴당 20달러로 저점을 다진 국제 유가가 지난해 말 80달러에 육박했지만 지난해 전기 요금은 인상되지 않았다. 한전 관계자는 “연료비 상승 여파로 지난해 2분기(4∼6월)부터 요금 인상 필요성이 생겼지만, 생활 안정 등을 이유로 줄곧 요금을 묶어뒀다”고 전했다. 제조원가가 올라가는데도 판매 가격을 그대로 둔 셈이다.
특히 지난해엔 한전이 전기 팔아 벌어들인 현금에서 설비 투자비 등을 뺀 ‘잉여현금흐름’이 -9조1천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받은 삼성동 본사 부지 매각 대금과 맞먹는 금액을 국민 전기료 지원에 소진한 셈이다. 한전의 적자는 결국 세금으로 메꿔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요금 인상분 납부 시기를 미룬 것과 마찬가지다.
증권가는 올해 에너지 가격 급등 사태를 맞은 한전의 경영을 정상화하려면 전기 요금을 kWh당 30원 이상 추가로 인상해야 한다고 추산한다. 올해 1∼3월 전력 판매 단가(킬로와트시당 평균 110원)에 견줘 20% 넘게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전 전기료는 석유파동 당시인 1979년과 1980년에도 매년 35%씩 급등한 전례가 있다.
한전 사정을 잘 아는 전직 고위 관계자는 “영국은 지난 4월 전기 요금을 54% 올리고, 석유·가스업체 등에 횡재세를 부과해 어려운 가정을 정부가 재정으로 직접 도와준다”며 “우리는 국민 인식상 요금을 한꺼번에 인상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한전을 재정으로 지원하고 전기료를 일부 올리는 게 적합해 보인다”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