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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하고 격의 없었던 ‘만인의 오빠’ 송해…

수미심 2022. 6. 9. 11:18

소탈하고 격의 없었던 ‘만인의 오빠’ 송해… 천상의 무대로 떠나다

입력 : 2022-06-09 06:00:00 수정 : 2022-06-09 08:15:11

송해, 95년 인생


6·25때 혈혈단신으로 남하한 실향민
통신병 복무 당시 한국전 휴전 타전
전후 가수로 데뷔, 코미디언·MC 활약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 ‘터줏대감’
소탈하고 격의없는 진행으로 사랑받아
세계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 등재도

각계각층 추모 물결

정치권 여야 한목소리로 애도
유재석·강호동 장례위원 맡아

원조 국민 MC, 현역 최고령 MC, 영원한 현역, 만인의 오빠, 일요일의 남자. 숱한 애칭으로 불리며 매주 일요일 “전국∼”이라는 외침과 함께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은 KBS1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가 8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95세.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를 헤쳐오며 서민과 함께한 코미디언이자 가수, 그리고 방송인이었다. 본명은 송복희.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배웠고, 23세 때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한에 혈혈단신으로 내려왔다. “6·25전쟁이 터졌을 때는 스물셋이었습니다. 해주음악전문학교에 다니다가 피란길에 올랐죠. 제 본명이 송복희인데, 상륙함에 실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망망대해를 헤맬 때 제 이름을 다시 지었습니다. 바다 해 자를 따와서 송해(宋海)라고요. 이 이름이 주민등록상 본명이 되었죠.”( ‘송해 1927’ 중)

부산 현지에서 군 통신학교에 입대한 후 통신병으로 복무하며 1953년 7월 27일 모스 부호로 전군에 휴전협정 타결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당시 모스 부호 타전을 여러 차례 방송 등에서 입으로 재연해보이곤 했다. 연예계에는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악단에서 가수를 했지만 악단 공연 특성상 진행을 하면서 입담을 살려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하다 보니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대 대중문화가 극장에서 방송으로 옮겨 가면서 고인도 TV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여성 코미디언 1인자 이순주와 콤비로 활약했다. 코미디언 배삼룡, 구봉서 등과도 한무대에 섰다.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TBC(동양방송) 라디오 방송 ‘가로수를 누비며’를 1974년부터 17년간 진행했다.

1988년부터는 KBS1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았다. 오프닝 멘트에서 고인이 “전국∼” 하고 외치면 관중들이 “노래자랑∼”이라고 화답하는 장면은 해당 프로그램의 트레이드마크. 고인은 이때부터 34년간 전국 팔도 안 다녀 본 곳이 없다.

생전 고인은 “‘전국노래자랑’은 내 평생의 교과서”라며 “세 살 먹은 아이한테도 배울 게 있다는 걸 경험했다. 관객이 단 한 명이 있어도 1만명이 있다는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밝혔다. 1998년 금강산 관광단으로 북녘 땅을 밟았을 때는 아이처럼 좋아했고, 2003년 ‘전국노래자랑-평양’편에서는 ‘한 많은 대동강’을 부르며 “다시 만납시다”라고 안타까운 작별인사를 전했다. 가수 태진아는 “송해 선생님과 함께 전국 팔도를 다 다녔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우리 가수들이 재기하고 히트곡을 내놓은 것은 다 선생님과 ‘전국노래자랑’ 덕분”이라고 애도했다.

고인은 전국을 누비며 무려 1000만명 넘는 사람을 만났다. 송해 특유의 친화력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긴장하는 출연자 마음을 훈훈하게 녹였다. 고인 스스로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낙지, 장어 등 각종 지역특산물을 들고 올라오는 참가자의 짓궂은 장난도 단 한 번 거부하지 않고 그들이 건네주는 특산물들을 모두 맛봤다. 참가자와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가수 배일호는 “선생님은 출연진과 스태프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실 정도로 불평, 불만, 투정을 안 하셨다”며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편안하게 받아주시고,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따지지 않고 격의 없이 사람을 대하며 배려해주셨다”고 추모했다. 고인의 이러한 삶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지난달 23일 기네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 세계기록에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또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은관문화훈장 등 무수히 많은 상을 받았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고 내 운명이고 내 팔자이니 내가 나를 위로해야 해요. 누가 직업에 대해 불평을 하면 꼭 그런 얘기를 합니다. 세상만사에는 우선 장단이 있는 것이고, 가볍고 무거운 경중이 있는 거고, 높고 낮은 높낮이가 있는 건데 왜 나라고 높은 데가 없습니까! 다 있습니다! 올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이죠.”

◆30여년 동행 신재동 악단장 “가슴 뻥 뚫린 듯”

 

30여년 동안 전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방송인 송해가 8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사회 각계 추모가 이어졌다.

 

고인과 같은 황해도 출신 실향민으로 평소 친분이 두터웠다는 방송인 이상벽은 언론 인터뷰에서 “평생을 바지런히 뛰었으니 이제 정말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쉬는 시간을 가지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1992년부터 송해와 ‘전국노래자랑’을 함께 해온 신재동 악단장은 “가슴 한켠이 뻥 뚫린 것처럼 허망하다”고 애도를 표했다. ‘전국노래자랑’으로 가수로 첫발을 내디딘 송가인, 김수찬을 비롯해 방송인 이용식·홍석천, 가수 딘딘 등도 고인과 인연을 회상하고 슬퍼했다.

 

송해의 삶을 담은 평전 ‘나는 딴따라다’(2015)를 집필한 오민석 단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최근 한류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의 한복판에 계셨던, 한국 근현대 대중문화사의 박물관”이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사진=뉴스1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한목소리로 고인을 애도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지낸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은 “송해 선생님은 참으로 소탈하고 망향의 아픔도 많고 애국심도 깊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죽는 날까지 무대에 서겠다’던 진정한 희극인 송해 선생님, 하늘에서 영원한 평안을 누리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잘하는 출연자에게는 꼬마에게도 큰절하고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며 격려했다. 자기를 낮추고 버리는 희생,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이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방송사들도 고인을 추모하는 방송을 긴급 편성했다. KBS1은 트로트 뮤지컬 ‘국민 MC 송해 추모특집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이날 오후 10시 재방송했다. 이어 같은 날 밤 12시10분 다큐멘터리 ‘송해, 군함도에서 백두산까지 아리랑’도 편성했다. 12일 낮 12시10분에 방송되는 ‘전국노래자랑’은 송해 추모 특집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TV조선도 이날 오후 10시에 송해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을, MBN은 이날 오후 10시20분부터 다큐멘터리 ‘송해야 고향가자’ 1·2회를 연속으로 재방송했다.

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故) 송해의 빈소에 금관문화훈장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오후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수 조영남과 김흥국, 쟈니 리, 개그맨 유재석, 조세호, 황교안 전 총리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다. 코미디언협회장(희극인장)인 고인 장례식은 엄영수 코디미언협회장을 장례위원장으로 이용식, 김학래, 최양락, 강호동, 유재석, 김구라, 이수근 등이 장례위원을 맡았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