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흰머리, 닳아버린 구두… 'K방역의 상징' 정은경 청장 퇴임
입력 : 2022-05-17 15:53:01 수정 : 2022-05-17 19:40:39
17일 물러나며 “새 청장 새 전략 기대”
“그동안 정치방역 아닌 과학방역했다”

쉴 틈 없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싸우며 국민의 신뢰를 받아온 정은경 (57) 질병관리청장이 방역 수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정 청장은 그동안 코로나19 방역정책을 이끌며 ‘K방역의 상징’, ‘국민영웅’ 등의 평가를 받은 데 대해 “너무 과분하다”고 말했다.
정 청장은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뒤 오송 본청으로 복귀하기 전
“공직자로서 자기 할 일을 잘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청장은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방역수장을 맡아 가장 아쉬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 “아쉬운 점이야 많다. 어떻게 100% 만족하겠는가”라며 “부족한 게 많았지만, 많이 도와주고 믿어주셔서…”라고 답했다. 새로 임명된 백경란 신임 질병청장에 대해서 정 청장은 “새 청장님께서 새로운 전략으로 잘 추진하실 것이라 믿는다”고 기대했다. 앞서 정 청장은 이날 오전 국회 복지위에서는 여야 의원들의 관련 질의에 “정치방역하지 않고 과학방역을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청장은 2017년 7월부터 질병관리본부장을 맡아 ‘방역 사령관’ 역할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9월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 뒤에는 초대 청장이 돼 ‘전선’을 떠나지 않았다. 정 청장이 방역 수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4년10개월만이다.
그는 지난 2020년 1월 코로나19 국내 첫 환자 발생 이후 2년4개월간 ‘K방역’을 이끌어왔다. 정 청장은 1995년부터는 질병관리본부(당시 국립보건원)에 들어온 뒤 28년간 질병과 광역 관련 현장에서 헌신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위기관리에 앞장섰지만 당시 사태 확산의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기도 했다.

정 청장은 특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 성실한 대응과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으로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행 초기 대구·경북에서 확진자 수가 급증했을 때는 “머리 감을 시간을 아끼겠다”면서 머리를 짧게 자른 일화나, 검소한 씀씀이가 드러나는 업무추진비 이용 내역 등이 화제가 됐다.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흰머리, 닳아버린 구두, 정 청장의 차분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대응은 코로나 극복의 상징처럼 인식되기도 됐다. 정 청장 임명 당시 임명장 수여식은 바쁜 상황을 고려해 이례적으로 ‘현장’에서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를 직접 찾아 임명장을 수여한 것이다.
정 청장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2020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직원들은 그를 두고 ‘꼼꼼하다’, ‘방역·국가 보건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해왔다. 그는 특히 새 정부가 출범해 임기가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방역 관련 회의나 행사에 직접 참여하며 마지막까지 성실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코로나19 방역 정책의 상징적인 인물인 만큼, 방역정책과 관련한 문 정부의 성과와 함께 비판도 정 청장의 몫이 됐다. 새 정부는 ‘K방역’을 ‘정치방역’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방역정책을 ‘과학적 방역’으로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