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니까 韓 수출전선 비상등? "요즘은 상황이 달라요"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엔화가 전쟁 발발에도 되레 급격히 가치를 잃고 있다.
일본정부는 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대응이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엔저 현상은 왜 생겼고 일본경제엔 무슨 영향이 갈까.
\또 우리나라는 이를 어떻게 보고 대응해야 할까.

글로벌 무역대국 일본의 엔화가 달러화 대비 약세를 보이는 엔저 현상은
십수년 전만 해도 한국 경제에 '적신호'로 여겨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과 치열한 수출경쟁을 벌여 온 일본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수출에 유리한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달러당 130엔을 넘보는 엔저 현상이 다시 벌어지고 있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수출전선엔 위기론보다는 좀 지켜보자는 신중론이 대세다.
수출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전공과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외려 일본 기업들의 원자재비 부담이 커져
한국 기업들에는 장기적으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엔저가 한국 기업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는 없다.
기업들은 그럼에도 한일 수출경합도(수출품목이 겹치는 정도) 등 수치를 통해 영향을 간접 측정한다.
한국과 일본 간 수출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다.
20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일 간 수출경합도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UN 컴트레이드(comtrade)에서 지난해 발표한 글로벌 시장 한일 수출경합도를 보면 2016년 0.487(1을 기준으로 하는 비율)로 고점을 찍은 후 2017년 0.463으로 크게 떨어졌다. 2019년 0.481로 반짝 올랐지만 곧 다시 안정세를 찾았다. 세계 시장에서 수출경쟁 완화 추세가 뚜렷하다는 거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일본과의 수출경합도가 낮아지는 이유는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은 메모리, 일본은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로 업역이 갈리는 것처럼 같은 품목이라 하더라도 주력이 차별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반도체, 기계, 자동차 및 부품, 철강, 비철금속, 플라스틱 등에서 모두 경합도가 낮아졌다"고 말했다.

한일 간 수출 전공이 갈리는 흐름은 산업계에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났다. 디스플레이와 가전, 반도체, 배터리, 조선 등 전통적으로 경쟁해 온 시장에선 이제 한국이 상대적 우위를 보이거나 일본과 각기 다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여전히 혈전 중인 모빌리티분야에서도 전기차, 수소차,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 업역이 세분화될 조짐을 보인다.
외려 엔저의 여파로 일본이 상대적 강세를 보이고 있는 첨단소재 분야에서 부담을 느끼게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은 금속과 화학 등 소재분야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원재료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솟는 원자재 가격이 소재산업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한 국내 수출기업 관계자는 "일본이 원자재를 전혀 수입하지 않는다면 엔저가 일본에 유리하다는 논리가 맞겠지만 일본 기업들도 원자재 수입 부담이 크다"며 "반대로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부장 수입가격이 싸진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저 현상이 초장기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양국 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일본 내에서도 엔저에 따라 소재 공급라인을 국내로 한정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 여파를 최소화하려 들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런 근본적인 변화는 엔저가 초장기적으로 계속될거라는 확신이 없다면 단행하기 어려우며, 현실적으로는 수출입 구조에 당장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