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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1만5000字(

수미심 2014. 1. 11. 05:33

 

한자 1만5000字(정부 지정 표준 한자에 없는 '확장 한자') 일일이 그려가며 國學 전산화

  • 유석재 기자

     

  • 입력 : 2014.01.11 03:03

    ['史料 전산화 선구자' 허성도 교수]

    방대한 사료연구에 필요한 건 '색인'… 15년간 공들인 전산화, 사회에 공헌
    "한글만 배워야 애국? 한자도 챙겨야… 다음달 퇴임, 옥천서 연구 몰두할 것"

    "이게 컴퓨터예요? SF소설에 나오는?"

    1980년 서울대, 초록색 화면의 모니터 아래 둔탁한 본체와 키보드가 놓인 물건 앞에서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초창기 데스크톱 PC인 애플 Ⅲ였다. 그해 갓 중문과에 부임한 허성도(65) 교수가 뭔가 골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로… 그것도 할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 다음 달 정년퇴임을 맞는 허 교수는 "그것이 국학(國學) 자료 전산화라는 커다란 작업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했다.

    
	허성도 서울대 중문과 교수는 “한자는 한국어의 고급화에 기여한다”며 “한자 문화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성도 서울대 중문과 교수는 “한자는 한국어의 고급화에 기여한다”며 “한자 문화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고등학교 때 국사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솔직히 성적이 모자라서 중문과에 진학했습니다." 중국 본토와는 교류가 없던 시절, 중국어의 인기는 바닥이었다. 그런데 중문과에서 한문 공부를 하다 보니 열심히 하면 역사 자료를 마음껏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는 국사학과 친구들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야! 번역은 내가 다 해 줄 테니 너희는 그걸 가지고 연구하렴." 그런데 그들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사실 정말 필요한 건 색인(index) 작업이야."

    그 방대한 사료(史料)의 바다에서 연구자들이 정말 자기가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쓸 수 있는 '찾아보기'가 절실하다는 얘기였다. 허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이 4964만6667자(字)인데 한 글자 보는 데 2초씩 잡고 하루에 4시간을 본다 해도 19년이 걸린다"고 했다. "언제 다 읽고 찾겠습니까?"

    처음엔 일일이 카드에 써서 분류하는 작업을 했는데, 컴퓨터라는 새로운 기기가 생각지도 못했던 세계에 눈을 뜨게 했다. "컴퓨터로 사료를 전산화할 수 있을까요?" 전문가가 대답했다. "그야 뭐~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요."

    그렇게만 된다면 검색은 대단히 쉬워진다. 이때부터 허 교수는 초·중·고 동창과 군대 선후배, 기숙사를 같이 쓰던 친구들까지 일일이 만났다. 10여년 동안 후원자 554명으로부터 약 1억3000만원을 모았다.

    1985년,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왔다. 승용차 한 대 반 값을 들여 새로 나온 386 컴퓨터 두 대를 연구실에 들여놓았다. "한 대에 80메가 하드디스크가 내장돼 있었습니다. 그제야 조선왕조실록도 전산화할 수 있겠더라고요." 태조실록부터 세조실록까지 한 글자씩 빠짐없이 입력했고, '삼국사기' '고려사' '제자집성(諸子集成)'도 전산화했다.

    정부 지정 표준한자 4888자에 없는 글자가 많아서 실록과 동의보감 등을 중심으로 1만5000여자의'확장 한자'를 뽑아낸 뒤 모눈종이에 직접 글자를 그려가며 새로 만들어 입력했다. 어느 날 관악산이 모눈종이처럼 보였다. 난시였다.

    이렇게 이뤄놓은 국학 전산화 작업의 결과물을 1999년 한국사사료연구소 명의로 공개해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의 이름은 숨겼다. 그는 "한국사 연구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할 수 있게 지원한 것"이라며 "나의 공이 아니라 후원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고 했다.

    시스템이 불편한 것을 못 참는 성미인 그는 현대 중국어 문법의 체계화에도 기여했고, 대중 역사 강연에도 나서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이어진 것은 합리적인 제도와 우수한 과학문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한글전용론자이면서도 한자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강하게 반대한다.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우리만 혼자 이탈하고 있습니다. 한글만 배워야 애국인 것처럼 착각하는데, 주변 국가들과 조화롭고 융화롭게 살도록 하는 것이 더 큰 애국이 아니겠습니까?"

    허 교수는 충북 옥천에 집을 지어놓았다. 퇴임 이후엔 그곳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했다. "휴대전화도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동안 못한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