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아시아의 세력균형과 한국의 생존
일본은 2013년 8월 유사 시 항공모함으로 전환할 수도 있는
이즈모함을 공개한 데 이어
차세대 첨단 스텔스 전투기인 F-35의 구매를 확대하는 등으로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고 있고,
‘집단자위권’(right of collective self-defense)과
‘적극적 평화주의’를 명분으로 군사력의 대외투사를
정당화해 나가고 있으며,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창설하고 안보정책의 신속한 결정을 보장하고 있다.
2013년 12월 26일 일본의 아베 총리는
주변국의 부정적 시각을 무시한 채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이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함으로써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표방하고 나섰다.
중국 또한 화평굴기(和平屈起)에서 벗어나
막강해진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적 역할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중국은 국방비를 계속적으로 10% 이상 증대시키고 있고,
2012년에는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을
전력화하는 등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2013년 11월 서해상에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기도 하였다.
동북아시아의 세력각축은 한국의 생존을 위협
일본과 중국의 세력각축에 대하여 한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일본이나 중국이 어떤 조치를 발표할 때마다 비난과 격양은 봇물을 이뤘지만,
실제적인 대비노력은 지속되지 않았다.
한국의 군사력은 전체적으로 미흡하기도 하지만,
북한대응에 묶여 주변국 대비로 방향을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한중일의 방공식별구역이 이어도 근처에서 중첩되고 있지만,
제주도 해군기지 사업은 가속화되지 못하고 있고,
국방예산은 정부재정증가율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수상의 신사방문에 대하여 규탄성명과 결의안은 난무하였지만,
일본의 공격적 대외정책에 대비한 방책은 별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동북아시아의 세력각축이 점점 첨예화되면
결국 한국이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서 한국의 국력은 적고,
군사력도 미흡하며, 정세 대응도 현명하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느라 지역 정세 변화에 대처할 여력도 없고,
내부적으로도 일치단결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말에 중국의 외교관이었던 황준헌은 당시의 조선을
“집이 불타는 줄도 모르고 지저귀는 참새와 제비와
같다”라고 염려하면서
'조선책략'(朝鮮策略)이라는 명칭으로 조선이 취해야할
외교방책을 제안한 바 있다.
조선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았으면
그러한 충고를 하고자 했을까?
당연히 지금의 대한민국은 19세기의 조선과는 다르다.
세계 13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세계 최강인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말의 역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국가의 대전략(grand strategy)은 불명확하다
힘을 중시하는 세력정치(power politics)의 무대로 변모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우리의 전략은 무엇인가?
18~19세기 유럽의 영국처럼 균형자(balancer)가 되어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을 달성하겠다는 것인가?
강한 국가를 우리 편으로 선택하여 편승(bandwagoning)한다는 전략인가?
중립을 선택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창의적인 전략이 있다는 것인가?
균형자가 되고자 하면 한국이 선택하는 쪽이
세력균형에서 우세해질 정도로 충분한 힘을
구비해야 하지만한국이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대로 동맹을 바꿀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러한 계산력과 약삭빠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감정에 의하여 흥분하는 경향이 크다.
그렇다면 강한 국가에 편승해야 하는데,
현재의 한국은 미국에 확실히 의존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 쪽으로 편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자주로 미국을 밀어내고,
중국에 대해서는 미온적이면서 경계심을 노출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립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다른 국가들이 인정해주지도 않겠지만,
한국이 중립국에게 요구되는
냉정성과 공정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대전략을 한국이 갖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의 상황이 '연작처당'(燕雀處堂)으로
묘사되던 조선말과 크게 다른가?
힘들이지 않고 해결하겠다는 외교적 환상
동북아시아가 세력정치의 각축장이 되었을 경우
한국의 외교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국가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세력각축이 명과 일본 사이에 벌어졌을 때는 임진왜란,
명과 청 사이일 때는 정묘호란 및 병자호란,
청과 일본 사이일 때는 한일합방,
미국과 소련 사이일 때는 한국전쟁이 발생하였다.
지금의 한국 외교가
중국과 일본의 세력각축을 예방 또는 중화시키고 있는가?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고압적 자세에 대하여,
일본의 집단자위권 주장이나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하여 한국의 외교적
해결노력이나 항의가 성과를 내고 있는가?
군사력을 기본으로 하는 세력정치에서 당연히 외교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과는 동맹관계,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혹은 동반자 관계,
일본과는 우방관계라는 수사에 안주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은 미국, 중국, 일본의
상대역들을 만나 한국의 입장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만족하고 있고,
우리가 어떻게 하기보다는 다른 국가들의 눈치만을 보고 있다.
고려 시대에 서희가 외교로 강동6주를 획득한 것이
외교가 아니라 고려의 막강한 군사력과
불굴의 국방의지 덕분이라는 사실을 보지 않으려 한다.
한때는 중국에, 한때는 일본에,
한때는 러시아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함으로써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던
조선말과 현 한국의 외교방향이 크게 다른가?
군대는 북한 재래식 위협 대응에 몰두
동북아시아 정세가 요동을 치고 있지만,
한국의 군사력 증강방향은 북한의 재래식 위협 대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Fight Tonight'이라는 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즉각적 대응태세만 강조되고 있다.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에는 정규전이 아닌
북한의 국지도발 대비로 군사력 증강의 중점이 전환된 상태이다.
그러면 북한의 핵무기는 어떻게 하는가?
응징보복, 선제타격, 한국형 미사일 방어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것을 실행하기 위한 계획과 조치는 후속되지 못하고 있다.
주변국과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경우 어떤 전력으로 대응한다는 것인가?
무기 및 장비 등의 경성요소(hardware)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군사사상, 교리, 전문성 등의 연성요소(software)이다.
장차 발생할 전쟁의 양상을 판단하여
최선의 전쟁수행개념을 도출하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사라졌고,
중국이나 일본과의 군사적 충돌에 대비한 계획은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
공부하는 간부들은 사라지고, 전문성보다는 인간관계가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주변정세가 급변하는 데도 임금과 조정대신들을 호위하는 데
급급하였던 조선말의 군대와 현재의 군대가 크게 다른가?
한미동맹은 약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하여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에 의존하고 있고,
동북아시아 세력경쟁에서도 미국의 힘과 위상에 기대는 측면이 크다.
한미동맹이 없다면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나 동북아시아의 세력각축이 너무나 심각해지고 있지만
한국은 자주에 집착하여 동맹을 약화시키고 있다. 2
015년 12월 1일부로 한반도 전쟁억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한
미연합사령부(CFC: Combined Forces Command)를 해체하기로 한 상태이고,
그의 연기를 요청하였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
미국의 지원을 필요로 하면서도 방위비분담에는 인색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통하여 간접적 동맹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데
대하여 한국은 아무런 딜레마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독도방문으로 한국의 전략적 융통성을 상실하였지만,
비판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다른 국가들과 일상적으로 하는 정보교류를 일본에 대해서만은 반대하고,
위급한 상황이었음에도
‘일본의 실탄’을 빌렸다고 국방부가 욕을 먹고 있다.
전략적 구도는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일본을 규탄하는 데 모든 국민들이 일치단결하고 있다.
미국은 미일동맹을 통하여 동아시아 전략균형을 도모한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뱡하고 있고
, 상대적으로 한미동맹은 약화되고 있다.
1950년에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그들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한 것과 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우방관계를 유지해야할 일본과의 관계를
대책없이 악화시켜도 된다는 것인가?
피아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면서 이 나라
저 나라와 모두 등지던 조선말의 상황과 현재가 크게 다른가?
내부는 극단적으로 분열
실제로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의 내부이다.
내부가 튼튼해야 외부에 대한 대응력이 힘을 발휘할 것인데,
현재의 한국은 외부로 지향되어야할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리는 블랙홀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모든 사안을 당리당략(黨利黨略)으로만 접근하고,
안보도 예외가 되지 않은 것이 오래이다.
민주화와 종북(從北)이 구별되지 못하고,
국가정보원의 활동마저 정치적 이해에 의하여 재단되고 있다.
파업과 불법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 국가를 염려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적 갈등은 전혀 해소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고,
이념적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기득권 세력은 너그럽지 못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은 악에 받쳐 있다.
앞 세대는 뒷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면서 복지를 탐닉하고자 한다.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타협보다는 투쟁이 선호되고 있다.
보수층에서는 중복과 진보가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진보는 종북몰이로 보수를 비판하고 있다.
손쉽게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사안은 거의 없고,
토론을 거듭할수록 분열만 가중되고 있다.
오랜 당파싸움의 바탕 위에서 개화파와 수구파로 갈라져 싸워던
조선말과 현재가 크게 다른가?
미래는 위험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한국은 조선말과 같은 전철을 밟아갈 가능성이 낮지 않다.
중국과 일본, 미국이 동북아시아 정세를 좌우하는 동안
한국은 객체로서 지켜봐야할 것이고,
그러다가 강대국들의 분쟁이 일어나면
그 결과에 따라서 한국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그 사이에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한다고 위협할 수 있다.
북한은 내부의 불안을 한국에 대한 도발로 전환시킬 수 있고,
개발된 핵무기로 협박하면서 필요한 경제원조를 강요할 수도 있다.
한국이 아무런 대비책이 없으면서 강경책으로 대응할 경우
상황이 급속하게 악화되면서
급기야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될 수도 있다.
한국의 경제력도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안보가 불안해지면 수출입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고,
수출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붕괴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점점 낮아지고,
결국 조선말과 같은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한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살길은 한미동맹과 자주적 국방태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국민들이 현 상황의 엄중함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어떻게 되겠지라거나 미국이 해결해주겠지라는 근거없는 낙관론은 금물이다.
다른 국가들의 탓으로 돌리거나 외세에 의존해서도 안된다.
지역적, 이념적, 계층적 갈등을 접어둔 상태에서
전 국민들이 일치단결하여 외부의 위협에
우선적으로 대비해 나가야 한다.
우리 모두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이성을 바탕으로 주변국의 의도를 분석하고,
한국의 대응책을 논의하여야 한다.
군사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군대를 존중하며, 복지보다는 국방예산을 우선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주성보다는 생존을 중요시해야 한다.
어렵더라도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보장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북한과 대결하면서 지역정세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포함하여 확고한 대북한 억제태세를 구축한 바탕 위에서,
민족공영의 명분으로 북한을 설득하여
동북아시아의 세력각축에 공동으로 대처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교류와 협력을 증진함으로써 기능적 통합을 증진해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세력균형, 편승, 중립 중에서 현재 상태에서
한국은 미국에 편승하는 방향으로 국가전략을 수립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년에 걸쳐 한미동맹이 확고한 형태로 구축되어 있고,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국력, 외교력,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서
영토적 야심을 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용미(用美) 차원에서 미국의 지원을 활용하고,
2015년 12월 1일부로 예정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조기에
연기한다는 결정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감정적으로는 불편하지만 일본과 협력관계를 단절해서는 곤란하다.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함께하고 있고,
한미동맹 및 미일동맹으로 간접적인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의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이후에서처럼
북한, 중국, 러시아가 노선을 함께하는 상황에서
일본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불가피하다면 감정적 불편함을 숨길 수 있어야 하고,
사안별로 한미일 협력을 도모할 필요도 있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도 증진하는 것은
세력균형이나 중립 차원에서 유용할 수 있다.
다만,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의 경험에 비추어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가 지니는 한계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고,
한미동맹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내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는 강력한 국방력이다.
조선이 세력각축에서 희생되었던 것은 전체적인 국력이 약한 탓이지만,
군사력을 거의 보유하지 못하였던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주변국들의 전력증강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적정수준의 국방비를 보장하고,
전략적 수준의 첨단 군사력을 보강하여야 할 것이다.
관건은 국민적 반성과 환골탈태
미국은 어떻게 해서 저렇게 광대한 영토를 확보하였고,
현재와 같이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을까?
일본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시작한 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해서
동양과 유럽의 경제적 중심이 되었을까? 단순히 운이 좋아서일까?
미국은 물론이고 독일과 일본은 매사를 철저하게 계산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결정 및 시행하였다고 판단된다.
그러한 것들이
누적되어서 현재의 미국, 일본, 독일이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은 어떻게 해서 계속적으로 외침을 받고,
아직도 동북아시아의 열강 속에서 어쩔 줄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을까? 단순히 운이 나빠서 그럴까?
그 외에 이와 같이 될 수밖에 없는 어떤 요인이 있지는 않을까?
우리의 의식과 선택기준을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고치지 않고서
조선말과 다른 앞으로의 역사를 기대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
위 글은 데일리안에 게재된 박휘락 교수의 글임.(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