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이 물에 잠겨도 감전 없이 불 켠다
입력 : 2013.12.10 03:01
[비젼테크, 水中 감전 방지장치 세계 첫 개발]
"原電침수 때도 정상작동 가능… 베트남 가로등 50만개
LED 교체사업 수주도 이번에 개발한 기술 덕분"
지난 6일 부산 부경대 변기식 교수(제어계측공학과) 연구실. LED (발광다이오드) 조명에 연결된 콘센트를 수조(水槽)에 넣었다. 콘센트 안에는 피복이 벗겨진 전선들이 있다. 즉시 엄청난 전류가 물로 흘러 전기장치가 망가지거나 물에 손을 넣으면 감전(感電)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LED 조명은 여전히 빛을 내고 있었고, 물에 손을 넣어도 멀쩡했다. 전류가 물로 흐르지 않은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국내 LED(발광다이오드) 조명 업체인 비젼테크가 대학, 정부 연구 기관과 완벽한 산학연(産學硏) 협동 연구를 통해 전기장치가 물에 잠겨도 누전(漏電)이나 과전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주는 장치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이 기술은 국내외 특허 23건이 출원돼 이미 국내 특허 결정서를 4건 받았다. 공동 연구자인 변기식 교수는 "원전에 적용되면 비상 발전기가 물에 잠겨도 정상 작동할 수 있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 비젼테크 이호석(오른쪽) 대표와 부경대 변기식 교수가 수조 속에 담긴 콘센트를 살펴보고 있다. 콘센트에는 피복이 벗겨진 전선들이 연결돼 있고 주변에 물이 가득 차 있지만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물에 손을 넣어도 감전되지 않았다. /비젼테크 제공
특허청도 처음엔 '전선이 물에 닿으면 전류가 흘러나온다'는 상식을 뒤집는 발명을 믿지 않았다. 지난 3월 첫 시연에서 특허심사관들은 "전기의 기본 법칙에 완전히 위배된다"며 전선 표면도 다시 깎고 수조의 물도 바꾸게 했다. 이후 4개월에 걸쳐 네 차례나 다시 시연을 하도록 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한전 전문가들을 불러 진행한 시연회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발명의 계기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이호석 비젼테크 대표는 2011년 3월 정부 지원을 받아 일본 도쿄 조명박람회에 참가했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엄청난 혼란을 직접 경험했다. 이 대표는 '발전기가 물에 잠겼어도 정상 작동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콘센트 안에는 피복이 벗겨진 전선들이 얇은 구리판 양쪽에 연결돼 나사로 조여 있다. 회사는 시행착오 끝에 이 구리판을 지금처럼 바닥에 눕히지 않고 직각으로 세우면 누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왜 그런지 원리는 규명하지 못했다. 이론화 작업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소개로 개발에 참여한 변기식 교수가 맡았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등 국책 연구 기관들은 공식 시험을 지원했다.
변 교수는 "추가 연구로 전선 한쪽은 구리판으로 연결하고 다른 전선은 이 구리판을 둘러싸는 전도성 입체에 연결하면 물로 흘러나온 전류가 밖으로 빠지지 않고 입체 안에만 머물러 누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이론은 이미 있었지만 아무도 물속 감전 방지 장치에 적용할 생각을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특허청은 변 교수의 연구 결과가 특허출원서에 추가되면 이 기술이 전 세계에서 원천 특허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는 "홍수가 났을 때 가로등이 그대로 켜져 있고 감전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재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베트남에서 최근 가로등 50만개를 LED로 교체하는 사업을 수주한 것도 이번에 개발한 기술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개발된 누전 방지 장치는 오는 12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창조경제박람회에서 전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