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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육지책(苦肉之計)

수미심 2013. 12. 10. 06:17

 

조조는 하북을 점령하고 남정을 시작하였는대

우선 강동의 손권에게 항복을 권하였습니다.

장소 일행은 손권에게 항복을 하자고 권하였고,

황개일행은 항복을 하지않고 맞서 싸우자고 했습니다

제갈량이 동오에 도착해서 손권,항복일행을 설득하고

주유가 돌아오자 주유의 소교를 조조가 사모하고 있다는 내용을 말해

주유에게 싸움을 하도록 만들었고,결국 맞서 싸우기로 하였는데

화계로 적을 공격하기 위해 황개가 주유에게 가서 고육지책을 권하였습니다.

그래서 회의때 황개는 주유에게 도발해서 곤장을 50대 맞았죠.

그리고 조조에게 투항하려 합니다. 바로 이게 고육지책이죠.

조조는 처음엔 잘 안믿었습니다.하지만 나중엔 믿게 되죠.

조조군에 수군 지휘를 잘하는 채모,장윤도 걱정거리였습니다.

조조측에서 장간이 주유를 설득하려고 갔을때

주유가 계략을 생각해 냈는대 채모,장윤의 글씨체를 따라하여

나중에 손권군으로 투항한다는 글을 써놨습니다

장간은 주유가 잘때 그 글을 발견하고 조조에게 받쳐 채모와 장윤은 죽고,

주유가 화계를 쓸려면 동남풍이 불어야 하는대 불지 않아서 병에 걸렸는데

제갈량이 기도를 해서 불게 한다고 했습니다.

주유는 칠성단을 세우고 거기서 제갈량이 기도하는동안 전쟁준비를 하였다가

동남풍이불자 서성,정봉이 주유의 명을 따라 제갈량을 잡으려다가 놓치고,

황개는 배에 불에 잘타는 것들을 실어놓고

조조의 진영으로가 배를 태우고 도망갔습니다.

그러자 손오군이 조조군을 공격하여 대패시켰죠.

유비군은 조조군이 퇴각할때 숨어있다가 추격했는대,

화용에서 관우가 조조를 옛정을 생각해 풀어주어서 살았죠.

조조는 허창으로 돌아가며 장료를 수춘에 배치시켰습니다.

 

적벽대전 줄거리와 화용방조(華容放曹)

 

사서 기록에 간단히 두줄로 조조가 패해 물러난걸로 나오는 적벽대전..

하지만 연의에 바탕으로 한 적벽대전은

한편의 영화라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를 주고 있다. 벽대전 줄거리 정리해 보면

제갈공명이 노숙과 함께 동오로 와서 대신들과 손권, 주유를 설득해 연합전선을 구축하며 조조를 물리치기로 합심하고.. 주유가 먼저 전초전으로 조조 수군을

맛보기로 격파하며 조조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조조는 장간을 주유에게 보내서 정탐하라 하지만 도려 장간은 주유가 써놓은 적을 이간시키는 반간계에 넘어가 채모/장윤이 모반한다는 거짓계책으로 조조는 수군도독인 이들을 죽이게 된다.. 한편 동오쪽에 잡히게된 장간은 방통을 만나 같이 도망쳐 나오면서..

방통을 조조에게 천거하면서 방통은 조조수군이 흔들지지 않게

연환계를 쓰자는 계책을 내놓는다. 한편.. 동오에서는 반간계에 더해

노장 황개에게 형벌을 주며 고육지계로 안의 내분이 있음을 시사하며..

감택을 조조에게 보내서.. 황개의 거짓항복서로 사항계를 펼친다..

이에 조조는 속는척하며 감택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황개의 투항날짜를 받아오라고 하고. 자기쪽에서는 채모의 동생들 채중과 채화를 보내면서 역사항계를 쓰게된다. 동오로 넘어온 채중과 채화는 적을 탐지하는

세객으로 활동하며 정보를 조조에게 빼돌리며 조조는 좋아라했지만..

이는 조조의 역사항계를 역이용한 주유의 심계로 적벽대전을 앞둔 미끼였다.. 하지만.. 전투를 앞두고 북서풍에 노심초사하던 주유에게 제갈량은 도사같은

신기로 동남풍을 선물해 주며 동오군을 빠져간다..출전을 앞둔날 역사항계를

펼친 채중과 채화의 목을 베어 결전을 다지며.. 고육지계를 펼친 황개를 위시한 

수군이 먼저 나서며 쇠사슬로 엮인 조조 수군을 일제히 공격하며 화염에

휩싸이게 만들고.. 이에 조조의 수군은 지리멸렬되며

적벽대전은 동오군의 승리로 마감한다..

하지만, 조조는 간신히 도망치면서 추격해 오는 능통, 감녕, 한당, 주태 정보등   동오군들을 피해서 도망치다가.. 제갈량이 먼저 손을 써놓은 매복군 조자룡과    장비에게도 간신히 쫓기다가.. 마지막 화용도 길목에서 관우를 만나며             조조는 지난일 자신이 당신을 구해준일을 생각해달라며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니.. 이른바 화용도(華容道)의 보은(報恩)이라는 일화다.. 고사성어로는 화용방조(華容放曹) 즉,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주었다는 뜻으로..                  관우가 과거의 은혜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조조의 목숨을 살려준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정사에서는 조조가 군사를 이끌로 화용도를 지나간 사실만 언급되어 있을 뿐.. 관우의 매복군을 만난 일이나 관우가 조조를 놓아준 기록은 없다..

하지만 연의가 이런 일화를 포함시킨것은 적벽대전이 끝난 뒤에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기 위해서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한 장치였을터.. 아니면 공명이 관우를 견제하기 위해서 꾸민 일이라고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즉, 적장을 놓아준 관우는 군율에 따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 공명이 유비의 간청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관우를 용서함으로써 관우의 기를 꺽어 놓을 수 있었다는 해석.. 아니면.. 공명이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때가 아니었기에 당시 상황에서   조조가 죽어 힘의 한축이 무너져 버린다면 그 공백이 손권에게 흡수되어 새로운 절대강자가 탄생되면 유비가 발딛고 설 틈바구니가 없기에                               조조를 일부러 살려준 공명의 계략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뭐.. 어찌됐든.. 이로써 조조와 관우는 샘샘이 된것이다..ㅎㅎ 

 

중국 북부를 완전히 장악한 조조는 장강에 수군을 집결해 놓고

오나라를 공략할 태세를 굳힌 뒤 손권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황제의 조칙을 받들어 반역의 무리들을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남하시켰소, 그랬더니 유종(劉琮)은 즉시 항복하였소. 지금 수군 80만을 정비해 놓고 있는데 장차 귀하와 오나라 땅에서 함께 사냥이나 할까 하오.”

 

말은 이처럼 다정한듯이 했지만 이는 손권과 한 판 맞붙어 싸워 보자는

도전장이었던 것이다. 당시 손권의 군사는 겨우 3~4만에 불과했다.

손권이 이를 여러 장수와 신하들에게 보이자 모두들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다.

거의 모든 신하들이 항복하자는 의견을 내세운 가운데 오직 노숙(魯肅)만이

강경히 맞싸울 것을 주장하면서 대장군으로 주유(周瑜)를 추천했다.

파양호에서 수군을 훈련시키고 있던 주유는 손권의 부름으로 올라왔는데

 조조군이 육전에는 능하나 수전에는 약함을 들어 역시 항전론을 폈다.  

 

그런데 막강한 조조군을 격파하기가 용이한 일이 아니어서 고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군 황개(黃蓋)와 숙의를 거듭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황개가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에겐 위나라의 대군을 이길 방도가 없다. 항복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격노한 주유는 황개를 곤장형에 처하여 몹시 쳤다.

그때 마침 오·초 연합군을 편성하도록 교섭하기 위해 오나라에 와서

체재하고 있던 제갈량이 그 광경을 보고 말했다.

“고육지계를 쓰지 않고 어떻게 조조를 속여 넘길 수가 있을고

(不用苦肉之計 何能瞞過曹操)?”  

 

전쟁에서 이기려면 고육지계(苦肉之計)를 써서

조조를 속이는 것이 상책일 것이라는 뜻의 말이었다.

실제로 황개가 곤장을 맞고 조조에게 투항하기로 한 모든 것은

실은 주유와 짜고 연출한 고육지계였던 것이다.  

 

황개가 주유에게 심한 곤장형을 당한 분에 못이겨 투항하려 하니

받아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조조에게 보내자 처음엔 의심하던 조조도

오나라에 숨겨놓은 정탐꾼의 정보를 들어보았을 때

황개가 주유에게 맞은 사실이 명백했으므로

그만 깜빡 속아 안심하고 그를 환대하기로 했다.  

 

고육지계-반간계-연환계-사항계-역사항계-화용방조

 

수어지교 水魚之交

 

유비가 새파란 젊은이를 들여다가 스승(?)처럼 우대하면서

침식을 같이 하는 등 자기들 보다 훨씬 더 우대하는 것을 본

관우와 장비는 볼멘 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무런 공도 세운 바 없는, 새파란 서생을,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그다지 우대하시는 겁니까?”

 

무(武)에 대해서는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지만

문(文 - 지략)에 대해서는 무지할 뿐만 아니라

거의 관심이 없는 그들에게

유비는 무엇이라 설명해서 설득해야 알아 들을 지 답답했다.  

 

그래서 그저 이처럼 달래었다.

“내가 공명(제갈량)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내 하는 대로 두어보게(孤之有孔明 猶之有 願勿復言).”

 

 

삼고초려 三顧草廬                                                                                        

  사마휘가 제갈량을 높이 평할 뿐만 아니라

서서 또한 그의 어머니에게 가기 위해 유비의 곁을 떠나면서

“제갈량은 누워있는 용입니다. 장군께서 그를 만나보실 의향이 없으십니까?”
하고 추천하므로 유비는

“선생께서 불러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부탁했다. 그러자 서서가 말했다.

“이쪽에서 찾아가면 만날수있겠지만 부른다고 오지는 않을것이니 친히 찾아가 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유비는 그의 권유에 따라 제갈량의 초막을 찾아갔다.

그런데 두 번이나 헛걸음을 치자 관우와 장비가 불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비는 그들을 달래어 세 번 째 찾아가게 되었는데 이때 비로소 그를 만나게 되었다.

천하 정세에 관해 대화를 하면서 제갈량의 높은 안목에 탄복한 유비는 자기를 도와 줄 것을 간청,

드디어 그를 군사(軍師)로 삼기에 이르렀다.  

 

군왕인 유비가 신하로 맞이할 사람을 찾아가 -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라 세 번 씩이나 -

출사(出仕: 벼슬길에 나아감)를 간곡히 부탁한 겸손한 태도 때문에 희대의 전략가를 얻게 된

촉나라는 비록 얼마 지탱하지 못하고 망하기는 했지만

한동안이나마 국위를 크게 떨칠 수 있었으니 이것은 후세의 좋은 교훈이 되었다*.


*그러나 이 일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삼국지연의》의 자료이기도 한 《삼국지(三國志)》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