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기록에 간단히 두줄로 조조가 패해 물러난걸로 나오는 적벽대전..
하지만 연의에 바탕으로 한 적벽대전은
한편의 영화라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를 주고 있다. 벽대전 줄거리 정리해 보면
제갈공명이 노숙과 함께 동오로 와서 대신들과 손권, 주유를 설득해 연합전선을 구축하며 조조를 물리치기로 합심하고.. 주유가 먼저 전초전으로 조조 수군을
맛보기로 격파하며 조조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조조는 장간을 주유에게 보내서 정탐하라 하지만 도려 장간은 주유가 써놓은 적을 이간시키는 반간계에 넘어가 채모/장윤이 모반한다는 거짓계책으로 조조는 수군도독인 이들을 죽이게 된다.. 한편 동오쪽에 잡히게된 장간은 방통을 만나 같이 도망쳐 나오면서..
방통을 조조에게 천거하면서 방통은 조조수군이 흔들지지 않게
연환계를 쓰자는 계책을 내놓는다. 한편.. 동오에서는 반간계에 더해
노장 황개에게 형벌을 주며 고육지계로 안의 내분이 있음을 시사하며..
감택을 조조에게 보내서.. 황개의 거짓항복서로 사항계를 펼친다..
이에 조조는 속는척하며 감택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황개의 투항날짜를 받아오라고 하고. 자기쪽에서는 채모의 동생들 채중과 채화를 보내면서 역사항계를 쓰게된다. 동오로 넘어온 채중과 채화는 적을 탐지하는
세객으로 활동하며 정보를 조조에게 빼돌리며 조조는 좋아라했지만..
이는 조조의 역사항계를 역이용한 주유의 심계로 적벽대전을 앞둔 미끼였다.. 하지만.. 전투를 앞두고 북서풍에 노심초사하던 주유에게 제갈량은 도사같은
신기로 동남풍을 선물해 주며 동오군을 빠져간다..출전을 앞둔날 역사항계를
펼친 채중과 채화의 목을 베어 결전을 다지며.. 고육지계를 펼친 황개를 위시한
수군이 먼저 나서며 쇠사슬로 엮인 조조 수군을 일제히 공격하며 화염에
휩싸이게 만들고.. 이에 조조의 수군은 지리멸렬되며
적벽대전은 동오군의 승리로 마감한다..
하지만, 조조는 간신히 도망치면서 추격해 오는 능통, 감녕, 한당, 주태 정보등 동오군들을 피해서 도망치다가.. 제갈량이 먼저 손을 써놓은 매복군 조자룡과 장비에게도 간신히 쫓기다가.. 마지막 화용도 길목에서 관우를 만나며 조조는 지난일 자신이 당신을 구해준일을 생각해달라며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니.. 이른바 화용도(華容道)의 보은(報恩)이라는 일화다.. 고사성어로는 화용방조(華容放曹) 즉,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주었다는 뜻으로.. 관우가 과거의 은혜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조조의 목숨을 살려준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정사에서는 조조가 군사를 이끌로 화용도를 지나간 사실만 언급되어 있을 뿐.. 관우의 매복군을 만난 일이나 관우가 조조를 놓아준 기록은 없다..하지만 연의가 이런 일화를 포함시킨것은 적벽대전이 끝난 뒤에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기 위해서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한 장치였을터.. 아니면 공명이 관우를 견제하기 위해서 꾸민 일이라고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즉, 적장을 놓아준 관우는 군율에 따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 공명이 유비의 간청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관우를 용서함으로써 관우의 기를 꺽어 놓을 수 있었다는 해석.. 아니면.. 공명이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때가 아니었기에 당시 상황에서 조조가 죽어 힘의 한축이 무너져 버린다면 그 공백이 손권에게 흡수되어 새로운 절대강자가 탄생되면 유비가 발딛고 설 틈바구니가 없기에 조조를 일부러 살려준 공명의 계략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뭐.. 어찌됐든.. 이로써 조조와 관우는 샘샘이 된것이다..ㅎㅎ
중국 북부를 완전히 장악한 조조는 장강에 수군을 집결해 놓고
오나라를 공략할 태세를 굳힌 뒤 손권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황제의 조칙을 받들어 반역의 무리들을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남하시켰소, 그랬더니 유종(劉琮)은 즉시 항복하였소. 지금 수군 80만을 정비해 놓고 있는데 장차 귀하와 오나라 땅에서 함께 사냥이나 할까 하오.”
말은 이처럼 다정한듯이 했지만 이는 손권과 한 판 맞붙어 싸워 보자는
도전장이었던 것이다. 당시 손권의 군사는 겨우 3~4만에 불과했다.
손권이 이를 여러 장수와 신하들에게 보이자 모두들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다.
거의 모든 신하들이 항복하자는 의견을 내세운 가운데 오직 노숙(魯肅)만이
강경히 맞싸울 것을 주장하면서 대장군으로 주유(周瑜)를 추천했다.
파양호에서 수군을 훈련시키고 있던 주유는 손권의 부름으로 올라왔는데
조조군이 육전에는 능하나 수전에는 약함을 들어 역시 항전론을 폈다.
그런데 막강한 조조군을 격파하기가 용이한 일이 아니어서 고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군 황개(黃蓋)와 숙의를 거듭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황개가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에겐 위나라의 대군을 이길 방도가 없다. 항복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격노한 주유는 황개를 곤장형에 처하여 몹시 쳤다.
그때 마침 오·초 연합군을 편성하도록 교섭하기 위해 오나라에 와서
체재하고 있던 제갈량이 그 광경을 보고 말했다.
“고육지계를 쓰지 않고 어떻게 조조를 속여 넘길 수가 있을고
(不用苦肉之計 何能瞞過曹操)?”
전쟁에서 이기려면 고육지계(苦肉之計)를 써서
조조를 속이는 것이 상책일 것이라는 뜻의 말이었다.
실제로 황개가 곤장을 맞고 조조에게 투항하기로 한 모든 것은
실은 주유와 짜고 연출한 고육지계였던 것이다.
황개가 주유에게 심한 곤장형을 당한 분에 못이겨 투항하려 하니
받아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조조에게 보내자 처음엔 의심하던 조조도
오나라에 숨겨놓은 정탐꾼의 정보를 들어보았을 때
황개가 주유에게 맞은 사실이 명백했으므로
그만 깜빡 속아 안심하고 그를 환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