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시아 복귀 전략을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여 작년 시진핑체제 출범때 "국제적 지위 걸맞은 강한 군대 건설" 3중전회서 NSC 신설 확정후 10여일 만에 방공식별구역 선포
덩샤오핑(鄧小平)은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무력 진압한 이후인
1991년 중국 지도부에 대외 전략과 관련한 '20자 방침'을 전달했다.
"미국을 비롯한 외부 세력과 충돌을 피하고, 종합 국력을 발전시키며,
안정적 발전을 추진한다. 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
(도광양회·韜光養晦)"는 내용이다. 이후 도광양회는 20년 넘게
중국 외교의 '기본 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면서 "중국의 외교 전략이
도광양회에서 '주동작위(主動作爲·해야 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로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방공식별구역 문제를 중국과 일본의 '고양이와 쥐' 게임 정도로 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시진핑 지도부가 외교·안보 전략의 새 틀을 공세적인 방향으로 짜고 있다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전략적 모호성을 위해 중국 지도부가 도광양회 폐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중국 외교는 이미 도광양회를 벗어났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가 만드는 주간지 '세계지식'은 올해 초 '주동작위(主動作爲·해야 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지난 6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2회 세계평화포럼'에서 "중국은 더욱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외교적 실천을 통해 국제사회가 중국에 거는 기대에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동작위'를 실천하겠다는 의미다. 시진핑 주석이 작년 12월 "중국 외교가 세계 규칙의 추종자에서 세계 규칙의 제정자로 변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주동작위'와 맥이 닿는다.
시진핑 지도부의 공세적 대외 정책은 작년 11월 시진핑 체제를 출범시킨 제18차 당대회 보고문에 이미 드러나 있다. 당시 보고문은 "중국의 국제적 지위에 걸맞고 국가 안보와 발전 이익에 부합하는 강한 군대를 건설하는 것이 전략적 임무"라고 밝혔다. 2011년 중국 국방백서에서 "중국은 방어적 국방 정책을 펴는 가운데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도, 군사적 확장을 시도하지도 않겠다"고 말했던 것과 대조된다. 시진핑 지도부의 대외 전략은 장쩌민 시대를 대표하는 '유소작위(有所作爲·할 일은 한다)와 '책임대국(責任大國·책임감 있는 대국)', 후진타오 시대의 '화평발전(和平發展·평화로운 발전)'과 '화해세계(和諧世界·세계와 조화롭게 발전)'보다 훨씬 공세적이란 분석이다.
특히 홍콩 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최근호는 방공식별구역을 시진핑 주석의 '결단'이라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중국 국방부는 몇 년 전부터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건의했다. 후진타오 지도부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지만, 시 주석은 지난 8월 결단을 내렸다.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 회의(3중 전회)'에서 중국의 대내외 안보를 총괄하는 국가안전위원회 신설을 확정하고 10여일 만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매체는 "3중 전회 하루 전날 주일(駐日) 중국 대사관은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인의 소재를 파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는 방공식별구역 선포 이후 중·일 간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처로 분석했다. 또 광저우 중산(中山)대의 데이비드 추이 교수는 "방공식별구역은 미국의 '아시아 복귀' 전략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박병광 연구위원은 "중국은 '아시아 복귀' 전략을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은 국방 개념도 공세적으로 바꾸는 분위기다. 인민해방군이 군대를 방어 위주인 7대 군구(軍區) 체제에서 작전 중심인 5대 전구(戰區)로 개편해 연합작전 지휘 체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일본 등과 동아시아 주도권을 놓고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공산 혁명 이후 손보지 않았던 군 체제도 개혁하려는 것이다.
아주주간은 "방공식별구역 선포 배경에는 중국이 동중국해 중간선 부근의 유전과 가스전에 대한 개발권 확보를 넘어 제1도련선(island chain·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돌파하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중국 해·공군이 제1도련선의 출구인 미야코(宮古) 해협을 일본 방해 없이 통과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항공기는 지난 7월 처음으로 제1도련선을 넘어 서태평양으로 비행해 미국과 일본을 긴장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