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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대한 이야기

수미심 2013. 11. 27. 07:15

 

나이에 대한 이야기

사람은 태어나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는다. 나이는 거저 먹는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없던 지혜(知慧)가 생겨나고 알 수 없던 일들을 이해(理解)하게 된다. 나이를 제대로 못 먹으면 나잇값도 못 하는 사람이 된다. 사람은 나이에 맞게 행동(行動)해야지 철없는 行動을 일삼아서는 안된다. 젊은 사람이 조숙(早熟)해서 늙은이 흉내를 내는 것도 곤란하고, 늙은 사람이 젊은이 흉내를 내는 것도 곤란하다. 지금은 나이에 따라서 십대니 이십대니 말하고 386세대니 사오정이니 하는 말을 쓰는데 예전에는 나이별로 어떤 말을 썼을까?

 

충년(沖年): 열 살 남짓의 나이를 沖年이라고 한다. ()은 어리다는 뜻이다. 사극(史劇)을 보면 世子께서 아직 유충(幼沖)하시니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유충(幼沖)이란 대충 유치원(幼稚園)에서 초등학교(初等學校) 저학년(低學年) 정도의 나이를 말한다.

지학(志學): 15()를 지학(志學)이라 하는데 지우학(志于學)의 줄임말이다. 배움에 뜻을 둔다는 말로 논어(論語)에 나오는데 지()란 마음이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을 말한다. 정신(精神)을 한 곳에 쏟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저 부모(父母)님이 하라고 하니까 하는 공부(工夫)는 공부(工夫)가 아니다. 내가 왜 공부(工夫)를 하여야 하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는 나이가 15()이다.

파과(破瓜): 16를 말하는데 파과지년(破瓜之年)이라고도 한다. ()는 깨트리거나 쪼갠다는 말이다. ()는 오이를 말한다. 하지만 파과(破瓜)는 오리를 쪼갠다는 뜻이 아니다. 오이 과()를 비스듬이 쪼개면 여덟 八 字를 두 개 잇대어 쓴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8+8=16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여성(女性)의 결혼(結婚) 적령기(適齡期)를 열여섯 살로 생각했다. 흔히 이팔청춘(二八靑春)이라 하는 것도 2×8=16이니 16()를 말한다. 이 말은 결혼(結婚)할 나이가 된 젊은이란 뜻이다. 과년(瓜年)이란 말도 같은 의미(意味)로 썼다. 예전 어른들이 집에 과년(瓜年)한 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가끔 들었는데, 시집갈 나이가 된 딸이 있다는 뜻이다. 남자(男子)의 나이가 스무살 안팎이면 약관(弱冠)’이라 하고 여자(女子)의 경우에는 방년(芳年)’이라 한다. ()꽃답다라는 뜻이니 말 그대로 꽃다운 나이라는 뜻이다.

이립(而立): 30()를 이립(而立)이라고 하는데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로서 이()는 접속사(接續詞)로 다른 뜻이 없고 립()은 자립(自立)하였다는 말이다. 스스로 주관(主管)을 확고히 세워 주체적(主體的)으로 판단(判斷)하고 자기의 길을 간다는 뜻이다. 15에 뜻을 세워 15을 매진(邁進)하고 나니 나름대로 자신(自身)의 가치관(價値觀)을 세워 한 분야(分野)의 전문가(專門家)가 되었다는 의미(意味)를 담고 있다.

이모(二毛): 32二毛라고 부르는데 중국(中國) ()나라 때 반악(潘岳)이란 시인(詩人)이 서른두 살 때 머리가 반백(半白)이 된 것을 두고 사용(使用)하게 되었는데 이모(二毛)란 말 그대로 머리털의 빛깔이 두 가지란 뜻이다. 흰 머리와 검은 머리가 반반(半半)인 것을 말한다.

불혹(不惑): 40가 되면 바깥 사물(事物)에 미혹(迷惑)되지 않는다는 뜻에서 불혹(不惑)이라 했다. 그 전까지는 이것을 보면 이것이 옳고 저것을 보면 저것이 옳은 것 같아 판단(判斷)을 세우기가 힘들었는데, 나이가 마흔 살이 넘게 되면 그런 판단(判斷)을 흔들림 없이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상년(桑年): 48를 뽕나무 상()자를 써서 상년(桑年)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파자(破字)해서 만들었다. ()자는 흔히 열 십()자 세 개 밑에 나무 목()자 형태(形態)의 속자(俗字)를 쓰는데 이 글자를 하나하나 분해(分解)하면 열 십()자 네 개와 여덟 팔()자 하나가 된다. 그래서 (10×4)+8=48이 된다. 지천명(知天命): 50를 말하는데 하늘의 명()을 안다는 뜻이다. 줄여서 지명(知命)이라고도 하는데 쉰 살이 되면 내가 이 세상(世上)에 태어나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까닭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 현재(現在) 하고 있는 일이 자기(自己) 의지(意志)만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攝理)에 의한 것임을 느끼게 되는 나이다. 안 될 일에 억지를 부리지 않게 되고 쓸데없는 욕심(慾心)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된다.

이순(耳順): 60를 말하는데 귀가 순()해 진다는 뜻이다. 귀는 소리를 듣는다. 젊은 시절에는 조금만 싫은 소리를 들어도 귀에 거슬려 화()가 나곤 하지만, 예순 살이 되면 웬만한 말은 걸러서 들을 수 있게 되므로 마음이 편안(便安)해 진다는 뜻이며 육순(六旬)이라고도 한다. ()은 본래(本來) 열흘이란 뜻인데 나이에서는 확장(擴張)시켜 10으로 使用한다.

고희(古稀): 70로 종심(從心)이라고도 부른다. 古稀란 말은 당()나라 두보(杜甫)사람이 70를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고 한 말에서 나왔다. 오늘날 평균(平均) 수명(壽命)70을 훨씬 넘어 섰지만, 예전의 70은 매우 드문 장수(長壽)라고 한다. 종심(從心)은 공자(孔子)께서 하신 말씀으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즉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法度)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에서 나왔다. 의식적(意識的)으로 하려 하지 않고, 그저 마음에 편(便)한 대로 자연(自然)스럽게 행동(行動)해도 그 모든 것이 법도(法度)를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모질(耄耋): 70부터 80까지 老人을 모질(耄耋)이라 말한다. ()70歲 老人을 질()80歲 老人을 말하는데 예전에 老人들이 목숨이 참 질기다는 표현(表現)으로 사용(使用)하기도 하였다.

희수(喜壽): 77를 말하는데 기쁠 희()를 초서(草書)로 흘려 쓰면 칠십칠(七十七)이라고 쓴 듯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산수(傘壽): 80를 말하는데 우산 산()을 약자(略字)로 쓰면 여덟 아래 열 十 字를 쓴다.

망구(望九): 81를 말하는데 81가 되면 90을 바라본다고 해서 망구(望九)라고 한다. 망구(望九)라는 말은 본래 좋은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쁜 말로 쓰는 할망구는 망구(妄嫗), 즉 나잇값도 못 하는 망령(妄靈)된 할머니라는 뜻이다.

미수(米壽): 88를 말하며 쌀 미()자를 분해(分解)하면 여덟 이 위에 거꾸로 있고 열 十字 밑에 여덟 이 있다고 해서 미수(米壽)라고 부른다.

졸수(卒壽): 90를 말하며 군사(軍士) ()의 변체(變體)가 아홉 구() 아래 열 십()를 쓰기에 졸수(卒壽)라 부른다.

백수(白壽,百壽): 99를 의미(意味)하는 백수(白壽)는 일백 백()에 하나()을 빼서 흰 백()이고 100를 의미(意味)하는 백수(百壽)는 그냥 百壽이며 기수(期壽)라고도 부른다.

개의 목숨 수()

지금처럼 醫學發達하지 않은 社會에서는 70을 넘기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70古稀라고 하였다. 稀貴, 稀少란 말에서 보듯 아주 드물다는 뜻이니, 古稀란 예부터 보기 드물다는 意味이다. 그러니 살을 사는 것은 지극히 稀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健康하게 오래오래 사시라는 祝福을 흔히 百壽圖로 불리는 文字 模樣으로 그려서 병풍(屛風)으로 꾸미거나 도장을 만들어 찍기도 하였다.

 한 글자의 모양을 이처럼 다양하게 바꾸어 表現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재미있다. 이와 비슷하게 복 개 그려 만든 百福圖도 있다.

 

연륜(年輪): 年輪本來 나무의 나이테를 말하는데 木理라고도 한다. 나무는 한 살 먹을 때마다 나이테가 하나씩 생긴다. 나이 먹은 나무를 자른 단면에는 수많은 나이테가 있다. 나이테를 보면 나무가 어떤 환경(環境)에서 살았고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무가 서있던 方向까지도 알 수 있다. 나이테가 많아질수록 나무는 더 단단해지고 허리가 굵어져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견딘다. 이처럼 어떤 일에 대한 經驗이 쌓이고 숙련(熟練)된 경지에 다다르는 것을 年輪이 쌓인다고 한다. 나이테를 보고 나무의 성장 과정을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얼굴 표정은 그가 어떻게 삶을 살아 왔는지 잘 말해준다. 사람을 보려면 그 만년(晩年)을 보라는 말이 있다. 젊은 시절 높은 명성(名聲)을 쌓고도 늙어서 제 손으로 그것을 다 허무는 사람들이 있다. 행백리자(行百里者)는 반구십리(半九十里)라고 하였다. 100길을 가는 사람은 90折半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다. 90오고서도 한 折半쯤 왔구나 하는 마음가짐이라야 人生年輪에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을 수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