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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다 공원

수미심 2013. 11. 13. 06:56

 

[그 섬, 파고다]7-

①정신지체 박카스 아줌마, 남편은 알고도…

최종수정 2013.11.12 13:09기사입력 2013.11.12 10:26

지난달 30일 종묘공원에서 박카스 아줌마가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빅시리즈7-①박카스 아줌마의 치명적인 유혹<下>

가난한 남편은 알면서도 성매매 방치
31세 젊은여인, 76세 할머니도 영업
"불편한 몸 때문에 다른 일은 하지도 못해"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그랬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정신지체 박카스 아줌마가 있다는 이야기도, 그런 아내의 성매매를 남편이 묵인하고 있다는 얘기도 모두 헛소문이 아니었다.

최근 종로2가 파출소에 1976년생 여성이 잡혀 들어왔다. '성매매 호객 행위' 때문이었다. 이 여성(37)은 종로3가역 2번 출구 일대를 서성이며 할아버지를 꾀어내는 '박카스 아줌마'였다. 앳된 인상의 그녀는 또래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니 말투가 어눌했다. 조사를 하던 경찰들은 아연실색했다. 여성이 정신지체장애 3급이라는 걸 알아낸 것이다. 정신지체 3급의 경우 지능지수(IQ)가 50~7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 기막힌 것은 이 여성의 남편이 아내의 성매매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여성은 돈의동 쪽방촌(아경 빅시리즈④ 7일자 9면)에서 남편과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경찰이 남편에게 부인의 성매매 사실을 알리자 "본인도 알고 있다"는 식으로 태연하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이 여성 이외에도 30대 박카스 아줌마는 더 있었다. 종로2가 파출소는 이 일대에서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다가 적발된 '박카스 아줌마' 23명의 인적사항을 카드로 만들어 관리하는데 이 카드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 중에 이 여성(37) 외에도 또 다른 정신지체 1981년생(32) 여성이 한 명 더 있었다. 또 1982년생(31) 여성은 가장 나이 어린 '박카스 아줌마'로 이름이 올라 있었다.

10일 서울 종로구 한 모텔에서 박카스 아줌마가 나오고 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경찰의 단속에 걸려든 박카스 아줌마 중엔 1937년생(76)도 있어 충격을 더했다. 경찰에 적발될 당시 이 일흔 여섯의 할머니는 68세의 '젊은' 할아버지에게 작업 중이었다고 한다. 파출소 관계자는 "이 할머니는 원래 경북 경산 출신인데 어쩌다 이리로 흘러 들어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할머니 못지않게 고령인 1944년생 할머니도 호객행위를 하다가 덜미가 잡혔다고 하니 파고다공원서 만난 할아버지가 왜 '박카스 아줌마'가 아니라 '박카스 할머니'라고 냉소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박카스 아줌마라는 꼬리표 때문에 주변의 냉대와 멸시를 받지만 이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술 팔고 박카스 파는 아줌마들은 대부분 남편없이 혼자 애키우는 사람이야. 그러니 방법 있어? 새끼들 먹이고 입히려면 이 일이라도 해야지. 여기 오는 아줌마 중에는 자기 혈액투석 비용을 대려고 이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 종묘공원 앞에서 만난 한 박카스 아줌마의 얘기다.

또래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줌마들이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종묘공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부럽지 않느냐고 묻자 "남편 잘 만난 팔자 좋은 여편네들 부러워해서 뭐해…"라며 얼굴이 굳어진다. 하지만 자식 이야기를 꺼내자 "큰아들이 공부를 잘 한다"며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큰딸이 고3이고 아들은 대학교 3학년이란다.

아줌마는 "나야 자식들이 속을 안 썩이니 다행이지만 자식이 엄마를 외면하는 놈도 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60대 박카스 아줌마는 술을 몰래 판 벌금 통지서가 집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성매매 사실을 아들에게 들켜버렸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머니의 성매매를 말리기는커녕 벌금통지서만 어머니에게 전해주고 돌아서서 가버리더란다.

종로3가역 지하에서 만난 한선화(70·가명·인천) 할머니는 지난 3월부터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슬하에 딸 둘,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마흔 한 살인 큰딸은 여관방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고 서른아홉인 둘째 아들은 중국인 아내와 갈라선 이후 중국에서 건설회사에 다니며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단다. 서른 두 살인 막내딸 역시 강원도 철원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식 덕 볼 생각은 진즉 버렸다. "자식들 알면 창피스럽지만 여 나와서 벌면 방세도 내고 전기세도 내고 하지 않나. 나는 지금도 부끄러버. 살 생각을 하니깐 이러는 거야." 한씨 할머니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2만원을 내고 반지하방에 혼자 살고 있다.

세 아이를 둔 가정주부였던 할머니는 20년 전엔 서울 우면산의 D사찰에서 비구니를 모시는 보살이었다. 1991년부터 8년 동안 절밥을 먹었는데 스님이 입적하면서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년 전 교통사고로 한 쪽 팔을 거의 못 쓰게 됐다. 먹고 살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박카스 아줌마가 됐다. 왜 하필 성매매로 밥벌이를 하느냐고 묻자 한 할머니가 갑자기 바지를 걷고 무릎에 점점이 박힌 뜸 자국을 보여준다. "너무 아파서 혼자 뜸뜬 자국이야. 팔 다리 멀쩡하면 주방에서 설거지라도 하겠어. 돈 없어서 거지꼴로 굶어죽는 것보단 낫잖아."

10일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근처에서 여느 때처럼 어깨에 가방을 메고 곱게 화장을 한 박카스 아줌마가 잔술집 의자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들 사이를 서성이고 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한씨 할머니는 이곳에서 '여사님'이라 불린다. 일종의 별명인 셈이다. 이 일대의 박카스 아줌마들은 이름 대신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거나 '안산댁', '마산댁', '천안댁' 하는 식으로 택호(宅號)를 쓰기도 한다. 한번은 동생들하고 청량리에 놀러갔는데 한 할아버지가 뒤에서 큰 소리로 '○○여사님 어데 가'라고 부르더란다. 끈질기게 불러대는 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그때부터 누가 물어보면 성도 안 가르쳐줘. 하긴 이름이고 뭐고 그저 나를 잊고 이 일을 하는 게 나아."

한씨 할머니에게 립스틱과 상의 색깔을 꽃분홍색으로 맞춘 아줌마가 다가와 알은체를 한다. 안산댁(59) 아줌마다. 안산댁 아줌마는 앞니를 비롯해 치아가 9개나 썩었다. 입을 열 때마다 듬성듬성 썩은 이가 보인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탓에 말투도 어눌하다. 안산댁 아줌마는 임대아파트의 임대료 20만원을 벌기 위해 박카스를, 몸을 판다. 딸이 둘 있다. 남편은 결혼한 지 7년 만에 간암으로 죽었다. "외로워 죽겄어. 부잣집 남자도 못 만나고. 이빨도 아픈데 돈이 어디 나서 치료를 하나"며 하소연도 늘어놓는다. 왜 이 일을 하느냐고 질문하기가 무섭게 가방을 열어 보여준다. 약봉지가 줄줄이 사탕처럼 딸려 나온다. 알약이 하나, 둘, 셋…. 총 7개다. 위장약, 허리약이란다. "몸이 다 고장났어. 애들도 정부에서 받아먹어서 키운거야.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체념한 말투다.

안산댁 아줌마의 푸념을 옆에서 듣고 있는데 한씨 할머니가 기자를 툭툭 친다. "저기 영감하고 빨간옷 입은 여자 좀 봐봐." 시선을 돌리자 한 할아버지와 50대 아줌마가 지하철역 지하 기둥에 나란히 앉아있다. 주변 시선에 아랑곳 않고 할아버지에게 여성이 쪽 입을 맞추자 돈 1만원을 얼른 쥐어준다. "저 영감이 한 달에 연금이 180만원이 나오는데 입 한 번 맞추면 만원, 가슴 한 번 만지면 만원 하는 식으로 하루 7만원 나가. 저 여자는 가만히 앉아서 7만원 벌어가지고 가는거야." 은근히 부럽다는 눈치다.

"흉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들어줘." 한 할머니는 민망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추임새를 넣듯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비아그라도 팔고 그렇게 해서 1만원도 벌고 2만원도 벌고 그래. 이거 흉이라고 생각하지마' 이런식이다. 할머니는 "여기 앉아 있다 보면 사는 게 별거 없다. 인생 이래 살다 가는가 보다 싶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내 혼자서 노래를 하나 지었다." 할머니가 입을 뗀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누가 내 시체를 묻어주랴. 봄이 오면 꾀꼴새가 내 무덤에 와서 울어주랴."

다시 피카디리 극장 앞. "딸내미 때문에라도 벌어야 하는데 그럼 나와야지." 한 박카스 아줌마가 휴대전화에 대고 말을 하며 파고다공원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할머니일 그녀의 뒷모습에는 직업적인 화류 여성의 모습이 깊이 배어있어 보는 이를 씁쓸하게 했다.

◆ "여성 가난과 노인 성욕의 일그러진 결합"

▲이호선 박사
"여성의 빈곤과 남성의 욕망이 만나 빚어진 일그러진 현상이다."

이호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사회복지상담학과)는 파고다 일대의 박카스 아줌마 현상을 노인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만들어진 음성적인 성문화로 정의했다.

학력이 낮고 건강하지 못한 탓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여성들이 호구지책으로 삼은 것이 '성매매'이며 나이와 상관없는 남성들의 삐딱한 성욕이 어우러지면서 빚어진 현상이 바로 이들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노년기에 접어든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 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2002년부터 박카스 아줌마를 연구한 이 교수는 "평생 전업주부로 살다가 뒤늦게 성매매 현장에 나온 분들도 적지 않다.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오로지 가난한 탓"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만약 지금처럼 박카스 아줌마 현상을 그저 종로3가만의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한다면 성병 등 보건의료학적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노인의 경우 노화가 함께 진행돼 성병인지 노화인지 구분을 못하기 때문에 성병을 옮은 남성이 가정으로 돌아가 전염시킬 우려도 높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남성 노인을 그저 '노인'으로만 보는 시각도 문제"라며 "남성의 발기부전 확률은 70대까지도 35% 밖에 되지 않으며, 80대가 돼서야 75%가 발기부전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80대 할아버지도 젊은 남성과 똑같이 성욕을 느끼고 성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아울러 이 교수는 "이런 남성의 욕망을 건강하게 배출할 창구가 필요하며 부부 성교육, 레크리에이션, 교육 활동의 장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호선 교수는
이호선 교수는 박카스 아줌마의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2008년 80여명의 박카스 아줌마들을 인터뷰했다. "너 굶어본 적 있느냐, 폐지 주워 본 적 있느냐." 인터뷰차 만난 여성들은 왜 성매매를 하느냐는 질문에 냉소했다고 한다. 실상은 경험해 보지도 않고 책상에서만 연구한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단다. 그 길로 며칠 동안 60대 여성을 따라 함께 폐지를 주워 손에 쥔 돈이 달랑 5200원. 그렇게 해서 얼굴을 튼 박카스 아줌마 10여명을 심층 인터뷰해서 두 차례에 걸쳐 논문을 발표했다. 올해 안에 3차 논문이 나올 예정이다.

1990년대 중반 인천의 집창촌에서 젊은 성매매 여성들을 인터뷰했던 이 교수는 이들과 박카스 아줌마의 차이점을 이렇게 말한다. "젊은 여성에게는 그런대로 희망이 있다. 박카스 아줌마들은 내일은 뭘 하겠다는 희망이 없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박카스 아줌마를 성매매 여성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보호하고 끄집어내야 할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그 섬, 파고다]6-

 

①박카스 아줌마 400명 활동…

 

주름진 性, 은밀한 거래

최종수정 2013.11.11 13:05기사입력 2013.11.11 10:54

 

 

빅시리즈⑥박카스 아줌마의 치명적인 유혹<上>

4일 서울 종로길 어느 작은 노점 옆 간이의자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한 할아버지가 다가가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자양강장제를 건네받고 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할머니들이 뭐라는지 알어? 2만원만 달래. 종묘공원엔 만원만 달라는 사람도 많아. 좀 젊다 싶으면 3만원은 줘야 돼." 경기도 양평에 산다는 박(75) 할아버지는 '시세'를 들려줬다. '경험 있으세요'라고 넌지시 묻자 "나도 내 친구들도 절대 안 해. 그러다가 몹쓸 병이라도 걸리면 무슨 개망신이야"라고 손사래를 쳤다. 박카스 아줌마에 대해 훤히 꿰고 있으면서도 박 할아버지는 극구 결백을 주장했다.

# 종로3가 지하철 1ㆍ3호선 환승역. 가을비를 피해 들어온 노인들로 가득한 역사 안. 꽃무늬 니트에 까만바지를 받쳐 입은 한 여성이 어슬렁대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기대선 한 할아버지에게 접근한다. 할아버지 앞에 멈춰선 여성이 갑자기 지갑에서 1만원짜리를 모조리 꺼내더니 지폐를 세기 시작한다. 무슨 일일까. "돈 냄새를 맡았나 보네. 저렇게 유혹하는 거여. 나 이만큼 잘 나가니 돈을 쓰라는 게지."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할아버지가 상황을 해설해 준다.
 
파고다ㆍ종묘공원 일대에 할아버지들을 유혹하는 '박카스 아줌마' 얘기는 과거형이 아니라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은 오히려 숫자로 입증되고 있었다. 혜화경찰서에 따르면 종묘공원 일대에서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다 적발된 건수가 2010년 11건, 2011년 59건이었다가, 2012년 108건, 2013년(1~9월) 97건 등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파고다공원에서도 올 9월까지 56건이 적발돼 지난해 수준(48건)을 이미 넘어서는 등 증가세는 마찬가지였다.(그래프 참조) 경찰 추산에 따르면 종묘공원, 파고다공원, 종로3가 지하철역 지하 등 종로 일대에서 성매매를 하는 '박카스 아줌마' 수는 어림잡아 400여명이다. 대부분 40~70대로 최근엔 중국동포 여성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2~3명씩 짝지어 다니기 때문에 금세 눈에 띄지만 단속은 쉽지 않다. 경찰이 뜨면 호객행위를 멈추고 딴청을 부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 더 살펴보기로 했다.

박 할아버지의 설명처럼 박카스 아줌마의 몸값은 연령대에 따라 다른 게 불문율로 통했다. 젊은 축에 속하는 40~50대 아줌마는 3만원, 60~70대 할머니는 2만원의 화대를 받는다. "이제 박카스 아줌마가 아니라 박카스 할머니야 할머니." 박카스 아줌마의 존재를 묻는 말에 파고다공원서 만난 한 할아버지가 이렇게 대꾸할 정도로 박카스 아줌마 무리 중엔 60~70대 할머니도 적지 않다. 또 구역에 따라 '물'이 다르다는 설명도 있었다. 파고다공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종묘공원은 A급, 지하철역 지하는 B급, 종로3가역 2번 출구 일대는 C급으로 나뉜다"고 했다. 화대에 포함되는 여관비는 보통 1만원인데 5번 이상 드나들면 5000원만 내면 방을 빌릴 수 있다고 한다. 박카스 아줌마들은 ○모텔, ○○방 등 종로3가역 인근에 있는 숙박업소와 장기계약을 맺고 좀 더 저렴하게 방을 대여하는데 이곳에서 나름 '단골' 대접을 받는 것이다.

박카스 아줌마가 다가오면 뿌리치지 못하면서도 할아버지 대다수는 이들을 깎아내리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며느리, 아내 몰래 이들과 몸을 섞으면서 '박카스 아줌마'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안 했다'고 잡아뗀다. 종묘공원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불쌍할 거 뭐 있어. 아마 다들 젊었을 때 화류계 생활하다가 갈 곳 없어 이리로 흘러 들어온 거지 뭐"라고 혀를 끌끌 찼다.

박카스 아줌마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이 일대에선 박카스 아줌마로 짐작되는 이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이들의 '인상착의'는 대부분 비슷하다. 주름을 가리기 위해 짙게 화장을 하고 하나같이 밝은 빛깔의 옷차림을 한다. 열이면 아홉은 크로스백을 어깨에 가로질러 메고 다니는데 이것도 이들의 공통된 패션이다. 이들이 배낭도, 토트백도 아닌 크로스백을 애용(?)하는 것은 왜일까. 한 박카스 아줌마는 "박카스를 여러 병 넣었다가 쉽게 꺼내기엔 크로스백만큼 편한 게 없다"고 귀띔했다.

가방 안이 궁금했다. 가방 안에는 콘돔, 비아그라, 젤 등 갖가지 '영업 도구'가 가득했다. 이들의 '영업 방식'은 간단하다. 음료를 파는 척 할아버지에게 접근해 은밀한 유혹을 하는 것이다. 음료 가격은 1000원. 소주를 내밀기도 하는데 소주는 잔 단위로 판다. 한 할아버지에게 접근했다가 '허탕'을 친 박카스 아줌마가 기자 뒤통수에 대고 혼잣말을 한다. "파리 한 마리가 날아 댕겨. 요리 갔다 조리 갔다 잡히지가 않네."

종묘공원에서 만난 한 박카스 아줌마는 "일을 빨리 끝내야 나도 덜 피곤해. 공칠 때도 있지만 하루 3명 받을 때도 있어. 어쩔 땐 유착기도 쓴다니깐"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박카스 아줌마가 건넨 비아그라를 잘못 복용했다가 비명횡사하는 할아버지도 있다. 종로2가 파출소 관계자는 "올해 비아그라를 잘못 먹고 변사한 할아버지가 두 명이나 된다"고 귀띔했다.

2009년부터는 '조선족'으로 힐난 받는 중국동포들이 박카스 아줌마 대열에 합류하면서 기존 아줌마들이 '영업'하기 힘들어졌다는 얘기도 들렸다. 실제 혜화경찰서 관계자는 "올 9월까지 성매매 호객 행위를 하다 걸린 사람 중 중국 동포의 비율이 60%에 달한다"고 말했다. 박카스 아줌마는 자신의 구역에 '뉴 페이스'가 뜨면 파출소에 이들을 고자질하기도 한단다. 다른 아줌마가 본인의 구역을 침범하면 머리채를 잡고 치고받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한모(70ㆍ인천) 할머니는 "진희(가명)라고 있는데 여기서 제일 못된 걸로 소문났다. 그 여편네는 자기 구역 넘봤다고 할머니도 두드려 팬다"고 했다.

이들은 영업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유부남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 앞, 박카스 아줌마와 10여분간 밀담을 나누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곤 헤어진다. 중절모를 쓰고 위아래로 양복을 차려입은 할아버지는 왼쪽 약지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결혼반지는 박카스 아줌마의 구애에 아무런 장애요소가 아닌 듯 했다. 기자의 취재를 알아차린 할아버지는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인근 옷가게로 쏙 들어가 버렸다.

박카스 아줌마와 일회성 만남을 넘어 로맨스를 꿈꾸는 할아버지도 있다. 지난달 종로2가 파출소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 봉천동에 사는 김모(70) 할아버지가 자신의 집에서 헤어드라이어를 슬쩍 했다는 이모(74) 할머니를 찾아달라고 신고한 것이다. 알고 보니 이들은 지난 2달간 동거하던 사이였다. 중국동포인 이 할머니는 지난 8월 종묘공원에서 김 할아버지에게 접근해 인근 여관서 몸을 섞었다. 할머니에게 연모의 정을 느낀 할아버지는 '15만원을 줄 테니 하루 종일 나랑 있어 달라'고 제안했다. 만남은 잦아졌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원룸에서 '함께 살자'고 졸랐다. 하지만 할머니가 다시 일을 하겠다고 우기면서 둘 사이는 틀어졌다. 일을 그만두라는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할머니는 홀연히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집을 나와 버린 것이다. 가진 것 없는 집에서 본인에게 쓸모 있겠다 싶은 물건만 쏙 빼서 가져간 것이다.
 
취재 중 좀 더 충격적인 얘기도 들렸다. 박카스 아줌마 중에 30대 여성도 몇몇 있는데 그중엔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여성도 있다는 것. 그녀의 남편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데 정신지체 아내의 성매매를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일자 <하>편에 계속)

◆박카스와 동아제약에 보내는 사과문

박카스'라는 고유명사가 '박카스 아줌마'라는 보통명사로 오용되고 있습니다. 아무 잘못 없는 동아제약 입장에서는 황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면을 통해 박카스를 만드는 동아제약에 우선 양해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파고다ㆍ종묘공원 등 종로 일대에서 할아버지를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을 일컬어 '파고다 아줌마'나 '공원 아줌마'도 아닌 하필 '박카스 아줌마'라고 부르다니요. 이들이 취급하는 '품목'엔 박카스뿐 아니라 소주도 있고 다른 이름의 비타민 드링크제와 커피도 있는데 말이죠.

캄보디아에서는 코카콜라보다 더 비싸게 팔릴 정도로 나라 안팎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박카스'에게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에 골이 나기도 할 것 같습니다.

'지천명(知天命)'이 넘어서도 매년 '국토대장정'을 하는 젊은이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박카스 입장에서도 치욕스러울 수도 있겠지요. 1961년부터 온 국민의 피로를 달래주는 '피로회복제'로 명성을 쌓아왔는데 느지막이 성매매 아줌마를 빗대는 은어로 쓰이다니요.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 여성들이 하고 많은 피로회복제 중에 하필 '박카스'를 팔기로 결정한 것을. 그만큼 박카스가 국민 음료라는 방증이기도 하겠지요.

박카스 아줌마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하필 박카스를 팝니까. 일단 한 병에 400원에 사서 1000원에 팔면 600원의 이문이 난다는 지극히 '경제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평생을 한 가정의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오느라 잔뜩 피로해진 할아버지들에게 '내가 그 피로감, 회복시켜주겠다'는 은밀한 제안을 박카스를 내미는 행위로 대신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네들을 지칭하는 다른 말을 찾지 못한 취재진의 게으름도 있겠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박카스 아줌마'로 통용되는 현실에 불가피하게 이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박카스와 동아제약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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