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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 피하려 집 샀는데

수미심 2013. 11. 1. 06:39

 

"미친 전셋값 피하려 집 샀는데..1억원 손해봤네"

2011년 전세대란 당시 전세 수요, 매매 전환 활발
취득세 50%감면 효과로 실수요자 대거 내 집 마련
서울 중소형 아파트 취득세 10배 가까운 손실

이데일리 | 양희동 | 입력 2013.10.31 18:52 | 수정 2013.10.31 23:31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대학 교직원 이모(45)씨는 2011년 10월 서울시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래미안세레니티' 아파트(1161가구)한 채(전용면적 84㎡형)를 2억원의 대출을 끼고 5억3000만원에 샀다. 2009년 10월 아파트 입주 때부터 이 단지에서 전세로 살던 그는 2년 새 전셋값이 6000만원이나 오른데다 취득세도 절반으로 감면되자 아예 내 집 장만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취득세 572만원을 감면받고 산 이 아파트는 현재 평균 매매가격이 4억8000만원으로 2년 새 5000만원 떨어진 상태다. 얼마 전에는 중간층인 8층 아파트가 고점 대비 1억원 내린 4억40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인근 삼광공인 관계자는 "종암동과 길음동 일대는 뉴타운 개발 거품이 꺼지면서 최근 2년간 신규·기존 아파트 가릴 것 없이 집값이 모두 빠졌다"며 "전셋값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빚을 안고 집을 샀다면 큰 손해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시장 장기 침체로 중대형은 물론 서울지역 중소형 아파트값도 하락세가 뚜렷하다. 최근 2년 새 1억원 가량 빠진 중소형 아파트도 수두룩하다. 2009년 입주한 서울 성북구 종암동 '래미안세레니티' 아파트 전경. < 사진 제공:삼성물산 >

    31일 국토교통부와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1년 전세대란 당시 실수요자들이 취득세 50% 감면 혜택을 누리며 구입했던 서울지역 중소형(전용면적 85㎡ 이하)아파트 가격이 최대 1억원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정부는 취득세율을 한시적으로 50% 인하하는 '3·22 주택거래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얼어붙은 거래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어 전세 수요를 매매로 돌리겠다는 복안이었다. 대책의 약발도 제대로 먹혔다. 2011년 한해 동안 전국에서 무려 98만1238건의 매매 거래가 이뤄졌다. 전년에 비해서는 거래량이 20만건이나 급증한 것이다.

    실수요자들은 전세난 속에 취득세 감면을 받을 수 있던 2011년이 내 집 마련의 적기라고 보고 중소형 아파트를 사들였다. 하지만 그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추락을 거듭했다. 2011년 1월 3.3㎡당 1803만원에서 이달 현재 1629만원으로 10%가량 떨어졌다. 전용 84㎡형을 기준으로 5억7700만원에서 5억2100만원으로 2년 새 평균 5600만원이 빠진 것이다. 취득세로 아낀 돈의 10배에 달하는 손실이다.

    특히 저렴한 가격 때문에 매입이 집중됐던 서울 강북권 아파트값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노원구 중계동 건영3차아파트(전용 84㎡) 전셋값은 3억5000만원 선으로 2년 전보다 5000만원 올랐다. 같은 기간 매매가격은 실거래가 기준으로 5억5500만원에서 4억5500만원으로 1억원 내렸다. 2년 전 대출을 받아 이 아파트를 샀다면 500만원가량의 취득세를 아낀 대가로 대출 이자와 집값 하락 등으로 세금 감면분의 20배 가까운 손실을 봤다는 얘기다. 중계동 K공인 관계자는 "노원구 일대에선 가격 상승 공식에 꼭 들어맞은 '역세권·대단지·중소형' 요건을 모두 갖춘 아파트조차도 전셋값만 올랐지 매매가격은 많이 빠졌다"고 전했다.



    < 자료:부동산114 >

    강남권 중소형 아파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송파구 가락동 쌍용1차 전용 59㎡형은 2년 전 4억7000만원 안팎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4억1500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한달 전에는 3억78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쌍용1차 아파트는 2011년 가을 이사철을 맞아 한달에 10건 이상 매매될 만큼 거래가 활발했던 단지"라며 "당시 2년 만에 6000만원이나 뛴 전셋값 때문에 이 아파트를 샀다면 취득세 감면분 517만원을 빼고도 5000만원 가량 손해를 본 꼴"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국내 주택시장은 가격 상승기를 지나 저성장기에 접어든 상태라 취득세나 양도소득세 혜택을 보려고 무리하게 집을 샀다가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며 "세금 감면 혜택을 보기 위해 무턱대고 내 집 장만에 나서기보다는 매입가 자체를 크게 낮출 수 있는 급매물이나 경매 물건에 관심을 갖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주택의 소유 개념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매매 활성화 정책에 맞춰 집을 샀다가 손해를 보는 수요자들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전세난을 잡기 위해서는 '주택 자가 보유 비율'과 '임대 주택 건설 및 매입량' 목표치 등을 구체적으로 정할 주택시장 로드맵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희동 (eastsun@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