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7.19 03:06
[사회학자 박길성 교수 '사회는 갈등을 만들고…' 펴내]
타협은 야합이 아니라 美德… 절충 몸에 밴 '교양시민' 돼야
- /조인원 기자
송전선을 깔지 못해 무용지물이 될 처지인 '밀양 송전탑사태'부터
아파트 층간 소음을 둘러싼 주민 다툼까지,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갈등의 현장은 복잡하고, 심각하다.
'갈등 비용 300조'라는 공익광고까지 나돌 만큼,
갈등을 관리하지 못해 치르는 기회비용은 천문학적 수치다.
중견 사회학자 박길성(56·사진) 고려대 교수는 경고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갈등의 전람회장 같다. 갈등은 폭증하고 일상화됐는데,
갈등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매우 취약하다.
상황에 따라선 불쏘시개만 던지면 폭발할 만큼, 한국은 위험사회다."
사회발전론을 전공한 박 교수는
최근 몇년간 한국 사회의 갈등과 통합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한국연구재단과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지원 아래 이뤄진
연구 결과는 비관적이다.
지난 반세기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압축성장'은 갈등 관리를 뒷전으로 미뤘다. 역사적 전통도 갈등 관리에 필요한 타협과 조정을 야합 또는 사이비로 몰아갈 만큼 부정적이다. 박 교수는 "서양에서 타협 또는 절충은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긍정적 규범이다. 타협이나 절충을 빼곤 문제를 민주적·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 갈등의 현황을 짚고, 대안을 모색하는 저서 '사회는 갈등을 만들고, 갈등은 사회를 만든다'(고려대 출판부)를 냈다. 그는 "87년 민주화는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억눌렸던 갈등을 표출시킬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을 만들어냈지만, 갈등이 발생할 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는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고 진단한다.
문제는 사회운동을 통해 힘으로 밀어붙이는 사회운동적 접근이 여전히 갈등에 대처하는 지배적 방식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사회운동이 갈등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지만, 갈등이 일상화되고 구조화된 시대에도 실력 행사를 통해 운동적 접근만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밀리면 죽는다는 인식, 밀어붙이기식,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권위주의에서 통용되던 비합리적 대응은 성숙한 민주주의 방식으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박 교수의 대안은 교양을 갖춘 시민들이 공동선을 달성하기 위해
심사숙고하는 '숙의(熟議)민주주의'다. 이를 위해 타협과 절충의 생활화,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식견 있는 교양시민 양성 등을 제시한다.
이타성, 동료애, 연대, 신뢰를 교육하고, 민주주의 틀 속에서
정당정치나 의회정치의 중요성도 끊임없이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또 보수·진보로 대립하는 사회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상대방의 자산(資産)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것을 주문한다.
"자유민주주의자들은 '평등'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개인'이나 '책임'을 매력적인 담론으로 인식해야 한다.
보수가 진보의 가치를 주목하면 더 윤택해지고,
진보가 보수의 가치를 주목하면 더 유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