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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죽음이 늘어난다

수미심 2013. 5. 5. 15:58

‘고독사’ ‘무연사’, 외로운 죽음이 늘어난다

혼자 죽음을 맞는 ‘고독사’ ‘무연사’가 늘어난다.

문제는 이것이 노인층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관계망이 해체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김은지·송지혜 기자 | smile@sisain.co.kr

‘팩트가 없는 사건.’ 담당 형사는 서 아무개씨(60·무직)의 죽음을 이렇게 명명했다. 지난 6월11일, 서씨는 자신이 살던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일주일째 연락이 닿지 않자 여동생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경찰서 지구대원은 침대에 누워 있는 서씨의 모습을 발견했다. 근처에는 빈 소주병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의 시신은 부패가 시작된 상태였다. 시취(屍臭)가 죽음을 알리고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술로 인한 뇌경색으로 혼자 사는 사람이 밤사이 숨을 거두는 일이 잦은데 서씨도 그런 경우이다. 하지만 뒤늦게 발견된 탓에 이곳에서 무슨 일을 겪다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아들 한 명과 딸 둘이 있었지만 함께 살지는 않았다. 7년 전 이혼하고 쭉 혼자 지낸 서씨는 주변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씨의 바로 옆집에 사는 주민은 “집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고 누군가 집을 방문한 적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 또한 서씨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서씨 아파트의 경비원은 “최근에는 딱히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아직 걱정할 나이가 아니었는 데다 이따금 밖으로 나올 때도 건강한 모습이어서 소리 소문 없이 죽을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관할 주민센터의 한 직원은 “서씨가 만 65세 이하인 데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지정된 사람이 아니어서 따로 방문하거나 연락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일본서는 10년 전부터 사회문제

고립된 삶을 살았던 서씨. 그에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락을 취한 곳은 채권추심 기관이었다. 서씨의 우편함에는 ○○신용정보·△△크레딧 같은 데서 보내온 독촉장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서씨에게 빚 독촉을 한 채권추심 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납금 납부 독촉 문자 메시지가 5월25일까지는 수신되었는데 닷새 후 보낸 메시지는 오류로 뜨거나 전화기 꺼짐 등으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서씨 사후에도 ‘긴급송달’ ‘긴급통보’와 같은 도장이 찍힌 우편물이 꾸준히 배달되어 있었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찾아온 서씨의 아들은 유품을 정리해 돌아갔다고 한다.


 


고독사. 서씨처럼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사후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되는 ‘고독한 죽음’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10년 전부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아직 국내에서는 고독사에 대한 논의가 적은 편이다. 따로 관련 통계가 분류되어 있지도 않다. 그나마 ‘노인층 고독사’를 중심으로 해법을 찾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다. 배우자와 사별 혹은 이혼한 채, 자식과 떨어져 사는 노인이 갑작스러운 충격이나 만성적인 지병에 대처하지 못하고 자연사해 뒤늦게 백골로 발견되는 사례 등이 연이어 알려졌기 때문이다. 2010년 국회에서 ‘노인 고독사, 막을 수 없나’라는 토론회가 열린 바 있다. 보건복지부도 노인 고독사를 막기 위한 노인돌봄 서비스·유케어(U-Care)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고독사가 더 이상 노인층에 한정되지 않을 거라는 데 있다. 정순둘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와 임효연 세종사이버대 교수(노인복지학과)는 고독사 관련 토론회에서 “고독사는 주변과의 연락 단절, 관심 부족, 사회복지 서비스 차단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사회 관계망이 해체되면서 고독사가 비단 특정 연령층의 문제로 머물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다.

지난 4월 통계청이 내놓은 <장래가구 추계>를 보면, 올해 가구원 수별 가구 구성비에서 1인 가구(25.3%)가 가장 많았다. 네 가구 중 한 가구는 혼자 사는 집인 셈이다. 1인 가구 수 비율은 계속해서 증가해 2035년에는 34.3%까지 늘어날 전망이다(38쪽 표 참조). 연령별 1인 가구 구성비를 보면 청·장년층의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0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1인 가구 중 40~50대가 29.9%, 20~30대가 23%이다.


한국에 드리운 ‘무연사회’ 징후

1인 가구가 ‘화려한 싱글’보다 ‘외톨이 빈곤층’의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 또한 통계가 보여준다. 앞서 인용한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나오는 같은 해 1인 가구의 소득을 보면 100만원 이하가 두 명 중 한 명꼴(53.99%)이었다. 1인 가구 직업군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직군은 무직 및 분류불능(49.3%)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단순노무 종사자(14.9%)다.

보고서에서는 1인 가구가 소득 평균이 낮고 그 격차도 확대되는 경향이 커 빈곤화가 심각해진다고 진단했다. 경기 불황과 비정규직 심화 등으로 비자발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사회안전망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사회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월, 경기도 수원의 한 고시원 침대에서 이 아무개씨(32)가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다. 강원도가 고향인 이씨는 부모의 이혼으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사망하기 전 마지막 3년은 연고 없는 수원에서 정착해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다 목숨을 잃었다. 혼자 살다 혼자 죽어간 이씨의 생은 ‘무연사회(無緣社會)’의 징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연사회 또한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이다(40쪽 딸린 기사 참조). 고독사를 넘어 모든 인간관계가 끊긴 상태에서 혼자 죽어 거두어줄 사람조차 없는 죽음을 ‘무연사’라 부른다. 저출산·고령화, 그리고 경제난 등으로 가족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망이 해체된 세상에서 연(緣)을 잃은 사람들이 겪는 사회 현상이다.

9월18일 오후 2시, 서울시립승화원에 시체 한 구가 도착했다. 관이 까만 스타렉스 차량에서 내려졌다. 자신의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된 전 아무개씨(83)였다. 앞서 40인승 운구차량에서 내린 다른 관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흐느끼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유족·지인은 없었다.

서울시의 위탁을 받은 장례업자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관을 이동식 탁자에 싣고 재빨리 화덕으로 향했다. 전씨의 마지막 모습은 장례업자와 기자만이 지켜봤다. 익명을 요구한 해당 장례업자는 “전씨는 아들·딸이 다 있는 걸로 아는데 가족이 인수를 포기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되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씨는 ‘무연고 사망자’라는 행정용어로 서울시에 등록됐다. 현장에 같이 있던 또 다른 서울시 위탁 장례업자는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이런 죽음을 가까이서 보면 그 자녀들이 괘씸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이러나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 일이 될까봐 두렵다”라고 말을 보탰다.




전씨처럼 유족을 찾지 못한 사망자는 행정당국의 ‘무연고 시체 처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처리된다. 한 달 동안 공고를 내 유족을 찾고 그동안 병원 영안실에 보관된다. 유족이 나타나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가 대신해서 화장을 해준다. 서울시의 경우에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한 뒤 근처에 있는 66㎡(20평) 남짓한 ‘무연고 추모의 집’에 유골을 10년 동안 안치한다. 1시간30분가량 걸려 화장이 끝나고 장례업자는 회색빛 플라스틱함에 전씨의 유골을 담았다. 유골은 차를 타고 20분가량 이동해 ‘무연고 추모의 집’에 안치되었다. 전씨처럼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돼 이곳에 안치된 이는 모두 3500여 명. ‘무연고 추모의 집’ 관계자는 “1년에 1~2기 정도는 유족이 찾아와 가져가고 나머지는 거의 그대로 10년을 채운 뒤 집단 안장된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무연고 사망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가늠해볼 수 있다. 서울시 복지건강실에 따르면, 서울시가 처리한 무연고 사망자는 △2009년 206명 △2010년 273명 △2011년 301명이다. 서울시 복지건강실의 한 관계자는 “노숙하다 돌아가신 분, 가족이 있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분 등이 무연고 사망자에 속해 있다”라고 말했다.

유품정리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무연사회’의 징후를 온몸으로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최초 유품정리 업체인 ‘키퍼스(Keepers)’의 한국 분점을 낸 김석중 대표는 2010년 유품정리업을 시작했다. 그는 “현장에서 일을 해보면 계속해서 무연사·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대도시에서 이런 죽음이 많다고 지적했다. “죽은 채 뒤늦게 발견된 현장은 80~90%가 서울·경기 등 대도시이다. 도시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안 보여도 뭔 일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다보니 그렇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유품정리 업자도 관계가 끊긴 곳에서 끔찍한 죽음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의뢰가 들어온 현장마다 좀 차이가 있다. 주택·아파트·원룸의 현장이 다 다르다. 원룸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경제적으로 힘든데다 주택과 달리 아예 서로 신경 안 쓰고 사는 구조라 뒤늦게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다세대 주택 등은 그나마 집주인이나 이웃과 왕래가 있어 시신의 상태가 덜 훼손돼 있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도 옆집에서 상을 당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유족들이 망자의 죽음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아 이사한다고 둘러대고 짐을 치운 적도 있다.”

김석중 대표도 자신이 겪은 50대 남성의 죽음 이야기를 꺼냈다. “이혼하고 자식들은 다 나가 살다보니 혼자 가게에 딸린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가게가 문을 안 열면 사람들은 ‘요즘 장사가 안 되나 보네’ 하고 넘어간다. 그러다 한 달 만에 죽은 채 발견된 사람도 있었다. 냉장고에 있는 술을 마시다 죽은 것으로 짐작됐다. 이런 비슷한 경우가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많다.” 김 대표는 일본 단카이 세대(2차 세계대전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가리키는 말)가 겪는 문제를 우리 사회가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다며, ‘40~50대는 무연사회 위험군, 20~30대는 무연사회 예비군’이라는 일본 사회의 해석에 동의했다.


낙오를 막는 사회 시스템 구축해야

무연사회는 한국에도 다가올 미래일 수 있다. 이미 경고등은 켜졌다.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팀이 쓴 <무연사회>는 “한국은 일본보다 출산율이 더 낮고 만혼·미혼 추세가 급증하고 있어 일본과 처한 상황이 별로 다를 게 없다”라고 경고한다. 이 책은 나아가 무연사회의 비극을 막기 위해 사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쏟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도쿄가스는 독거노인의 가스 사용 여부를 자녀 등 의뢰인의 휴대전화나 이메일로 알려주는 유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스 사용량이 줄어들면 의뢰인이 곧바로 그 사실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상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 만큼, 그 인간관계의 빈틈을 메워나가는 다양한 비영리 민간단체(NPO)의 역할도 강조되고 있다. 또 사회보장제도나 네트워크가 메울 수 없는 개인의 ‘인연맺기’와 ‘소통’의 중요성도 잊지 않는다.

이제 막 고독사 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한국 정부가 내놓은 대안도 비슷한 생각을 담고 있다. 민관이 협동해 일대일로 독거노인과 자원봉사자 간 결연을 맺도록 하자는 식이다. 그러나 저소득층·청장년층에서도 고독사가 늘어나는 최근의 추세를 감안하면 좀 더 궁극적인 해법은 낙오를 막는 사회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회사와 인연이 끊어진 사람들, 구조조정이나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 등이 무연사회의 토양이 되었다는 일본의 경험은 곧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