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작은 일탈과 방황, 실패에 벌벌 떨고 겁을 낸다
하지만 1등만이 늘 최고의 삶은 아니다
정동기씨가 "난 일류대를 못 나와 마이너리그로 살아왔다"고 울분을 토했을 때,
실제 상처를 받았던 이들은 숱한 학부모들이었다.
정씨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 대검차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딱 하나 '감사원장'에서 막혔을 때, 세상이 모르는 자신만의 억울함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마 더 큰 권세와 부(富)가 주어져도 그는 출신 대학에 대해 징징댔을 것이다. 정씨는 주위를 좀 둘러봐야 했다. 요즘 대학마다 신입생 합격자 발표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 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학부모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
그럼에도 일류대에 들어간 아이들의 '고투(苦鬪)'는 여전히 대서특필될 만하다. 우리 학창 시절보다 몇 십배나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과거 우리 때는 어쩌면 일년 바짝 하면 그런대로 결실을 보았다. 요즘 아이들은 중학교 때는 '특목고'로 경쟁하고, 고등학교 때는 3년 내내 내신성적에 조바심을 내야 한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낙오한다는 걸 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오직 대학에 몽땅 투자한 셈이다. 일류대에 합격한 아이들에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수능시험에는 71만여명이 응시했다. 속칭 '일류대'로 분류되는 대학들의 총 정원 수는 3만명 안이다. '마이너리그' 정동기씨가 나온 대학도 사실 여기에 포함된다. 그 안에도 등급은 있겠지만, 학부모들이 자녀 얘기를 내놓고 할 수 있는 대학들이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나머지 아이들 68만명은 '그저 그런(사설학원 강사들 표현)' 대학에 가거나 아예 탈락한다. 집집마다 어둠 속에 한숨과 탄식이 새어나올 것이다. 일류만 추구하는 세상에서는 이들의 존재가 보일 리 없다. 해마다 이런 아이들이 절대다수임에도 말이다.
내 아들도 응시한 대학마다 떨어졌다. 방구석에 처박혀 지내는 녀석의 심사를 감히 물어보지 못한다. 자칫 부자(父子)관계의 결딴이다. 인터넷에서는 마침 이 녀석의 심정을 대신한 것 같은 또 다른 아이의 글이 떠돌고 있었다.
'시험을 망치고 나서 정말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원서 쓰기 전에는 어느 대학 쓸까 고민만 하고, 쓰고나서는 붙을까 떨어질까 걱정만 하고, 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수능 보기 전보다 말이죠. 결국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전 이제 절대 졸지 않고 긍정적인 삶을 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처세'를 전수했다. 남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 인생 낙오자가 될 테니까. 아이들은 작은 일탈과 방황, 실패에 벌벌 떨고 겁을 낸다. 좌절을 안 해보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잃는 것과 같다는 말이 이런 아이들에게 위안이 될 리 없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좋지만 모두가 꼭 잘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 학부모들이 먼저 화낼지 모른다.
현실에서 살다 보면 학벌이 작용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삶의 성패와는 무관하다. 그로 인해 삶이 '마이너리그'가 되진 않는다. 정씨의 말에 속지 마라. 오히려 한때의 1등이 그 뒤의 삶까지 1등이 되는 경우를 난 별로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1등만이 늘 최고의 삶도 아니다. 치열하게 경쟁을 해 소수의 일류가 되는 것도 빛나지만, 민주적 시민으로서 제 몫을 하는 삶도 그에 못지않게 가치가 있다. 어쩌면 건강한 사회는 절대다수인 이들의 삶 태도에 훨씬 더 달려있을 것이다.
사실 내게는 자녀 교육 '면허증'이 없다. 단지 내 노동으로 지금껏 먹이고 키웠다는 이유로 아들에게 꼭 한번 말한다.
"너는 아버지와 다른 장점과 특성이 있다. 또 나보다 키도 크고 잘생겼다. 당당하게 말도 잘한다. 이 정도만 갖춰도 사회에 나가 굶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해라. 네 삶은 네가 사는 것이다. 다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빈둥빈둥 낭비하지 마라. 아버지가 돌아보니 그것이 가장 아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