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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들 극성에 멸종위기 흰목물떼새 '수난'

수미심 2022. 5. 5. 19:36

"더 가까이서"..중랑천 몰려든 사진가들 극성에 멸종위기 흰목물떼새 '수난'

김기범 기자 입력 2022. 05. 05. 16:05 수정 2022. 05. 05. 16:51 댓글 36
 
서울 중랑천의 한 모래톱에서 알을 돌보고 있는 멸종위기 조류 흰목물떼새의 모습. 북부환경정의중랑천사람들 제공.


서울 중랑천에서 번식 중인 멸종위기 조류 흰목물떼새들이 몰려드는 사진가들로 인해 수난을 겪고 있다. 서울시의 교량 공사로 인한 번식지 수몰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는 흰목물떼새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구역 지정이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중랑천으로 사진가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부터다. 한해 중 이 시기에만 찍을 수 있는 포란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부 사진가들은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채 촬영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흰목물떼새들이 제대로 알을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 중랑천에서 지나치게 흰목물떼새에 접근해 촬영을 하는 사진가의 모습. 북부환경정의중랑천사람들 제공.


환경단체인 북부환경정의중랑천사람들과 전문가들은 흰목물떼새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알이 제대로 깨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위협을 느끼면서 2주가량 품었던 알들을 포기한 사례도 확인됐다. 이정숙 중랑천사람들 대표는 5일 “포란한 지 4주 이상 지났는데 아직 부화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며 “이미 부화를 했어야 하는데 인위적 교란으로 흰목물떼새들이 알을 품을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멸종위기 조류 흰목물떼새가 서울 중랑천의 모래톱에 낳아놓은 알들의 모습. 북부환경정의중랑천사람들 제공.


많은 시민들이 산책 등으로 오가는 중랑천 자전거도로·보도에서 흰목물떼새들의 터전인 모래톱은 10m 이상 떨어져 있다. 사람들이 일부러 물가 가까이 가거나 하천 내로 들어가지 않으면 흰목물떼새나 꼬마물떼새 등 새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알을 돌보거나 먹이활동을 한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수시로 중랑천에서 감시활동을 하면서 사진가들에게 물가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지만 활동가들 모습이 안 보이면 사진가들이 다시 물가로 접근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활동가들이 관할 구청에 연락해 구청 직원들이 나와서 주의를 주기도 하고, 안내판도 세워놨지만 사진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흰목물떼새 보호를 위해 서울 도봉구청이 중랑천에 세워놓은 안내판. 북부환경정의중랑천사람들 제공.
서울시의 교량공사로 모래톱이 수몰돼 번식지가 부족해지면서 하천 내에 버려진 타이어 속에 둥지를 만든 흰목물떼새의 모습. 이 둥지의 알은 지난 1일 비가 내리면서 유실됐다. 북부환경정의중랑천사람들 제공.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공사로 인한 모래톱 훼손과 몰상식한 사진가들의 행태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 4일 오후 노원에코센터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환경정의 공동대표인 김진홍 중앙대 명예교수는 “흰목물떼새 서식지역을 생태경관보전지역이나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류 전문가인 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상임이사는 “번식기에는 사람의 출입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보호지역을 지정하면 흰목물떼새뿐 아니라 원앙 등 다른 조류와 수서곤충, 어류도 함께 보호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