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크기 남극 빙하 5년내 산산조각?
한반도 크기 남극 빙하 5년내 산산조각?..지구 종말의 날 초래할 수도
송경은 입력 2021. 12. 24. 17:09 수정 2021. 12. 24. 19:00 댓글 6개한반도 총면적과 비슷한 크기
빙하가 바다로 안흘러 내리게
버팀목 역할하는 중요한 빙붕
자동차 앞유리에 균열 생기면
작은 충격에도 산산조각 나듯
스웨이츠 3~5년내 붕괴 임박
온난화로 年500t씩 녹아내려
다 녹으면 해수면 65cm 상승
해수면 3m이상 높아질 경우
전세계 인구 6억명 피해 입어
'지구 종말의 날' 초래할수도

이런 가운데 빙하가 바다로 흘러내리지 못하게 막는 버팀목 역할을 해온 남극의 주요 빙붕(氷棚)이 5년 안에 산산조각 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빙붕은 남극대륙 빙하와 맞닿은 채 바다에 떠 있는 얼음 덩어리로, 빙붕이 무너지면 대륙의 빙하가 바다로 유입되면서 급격한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을 받아놓은 욕조에 사람이 들어가면 물에 잠긴 몸의 부피만큼 수면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수십 년 내 해수면이 5m 이상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스웨이츠빙하협력단(ITGC)' 연구진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2021년 미국지구물리학연합(AGU) 춘계 회의'에서 "스웨이츠 빙하의 3분의 1을 지탱하고 있는 스웨이츠 동쪽 빙붕에서 새로운 균열이 관측됐다. 이 균열은 연간 2㎞에 달하는 무서운 속도로 매우 취약한 상태의 빙붕 중심부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스웨이츠 동쪽 빙붕은 5년 내 산산조각 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남극의 5대 빙하 중 하나인 스웨이츠 빙하는 면적이 약 19만2000㎢에 달한다. 미국 플로리다주(17만312㎢)나 영국 본토(20만9331㎢), 한반도(22만2000㎢) 등과 비슷한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규모의 빙하로 꼽힌다. 스웨이츠 빙하는 전부 녹아내릴 경우 심각한 해수면 상승을 일으켜 지구에 재앙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둠스데이(Doomsday·종말의 날) 빙하'로도 불린다.
논문 제1저자인 에린 페티트 미국 오리건주립대 지구해양대기과학부 교수는 "현재 남극 빙붕의 균열은 자동차 앞 유리의 균열과 비슷한 상태다. 자동차 앞 유리에 생긴 균열은 서서히 커지다가 자동차가 어딘가에 살짝 부딪치면 그 즉시 앞 유리는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부서진다"며 "결국 균열은 빙붕의 취약한 부위를 따라 지그재그 형태로 얼음을 관통하면서 빙붕을 산산조각 낼 것"이라고 밝혔다.
빙붕은 이미 바다에 떠 있는 얼음 덩어리이기 때문에 빙붕이 녹거나 부서진다고 당장 해수면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다만 빙붕으로 이뤄진 장벽이 무너지면 댐의 수문을 여는 것과 같은 효과로 많은 양의 빙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서 해수면 상승으로 직결된다. 이원상 극지연구소 해수면변동예측사업단장은 "빙붕이 무너지면 코르크 마개가 '뻥' 열리듯 내륙빙하까지 걷잡을 수 없이 녹아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남쪽 아문센해에 인접한 스웨이츠 빙하는 해마다 약 500억t씩 녹아내리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사라진 얼음만 5950억t에 이른다. 그동안 전 세계 해수면 상승에 대한 스웨이츠 빙하의 기여도는 4% 수준으로 평가됐다. 가령 해수면이 1m 상승했다고 하면 이 중 4㎝는 스웨이츠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올라갔다는 뜻이다. ITGC 연구진은 빙붕이 산산조각 난 뒤 스웨이츠 빙하가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바다로 흘러내리기 시작하면 스웨이츠 빙하의 지구 해수면 상승 기여도가 25%까지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웨이츠 빙하가 완전히 소멸할 경우 해수면이 65㎝ 이상 올라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남극이 기후변화에 특히 취약한 이유는 지대가 해수면보다 500m 이상 낮아 따뜻한 물에 빙하가 그대로 노출돼서다. 육지를 2500m 두께 빙하가 뒤덮고 있는데 해수면과 맞닿은 아랫부분이 계속 녹으면서 바닷물이 점차 빙하 밑으로 깊숙이 침투하는 것이다. 그만큼 빙하 가장자리의 빙붕도 얇아져 점점 지지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빙붕에 계속 균열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다른 지역보다 빙하가 더 빠른 속도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에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사상 최대 규모의 남극 빙하 조사 프로젝트인 ITGC는 2018년 10월 첫 탐사에 나섰다. 스웨이츠 빙하 등 서남극 일대를 정밀 조사해 기후변화의 영향을 밝히고 남극 빙하 붕괴에 따른 미래 해수면 상승을 예측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이를 위해 영국과 미국 정부는 5년간 총 5000만달러(약 600억원)를 투입한다. 영국과 미국 외에도 한국 독일 스웨덴 뉴질랜드 핀란드 등 과학자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2019년 6월 ITGC에 합류했다.
ITGC 연구진은 지난 30년간 해수 온도 상승으로 스웨이츠 빙하가 바다로 유입되는 속도가 2배가량 빨라진 사실도 확인했다. 스웨이츠 빙하가 녹으면 서남극에 있는 다른 빙하들 역시 불안정해지고, 해수면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ITGC 과학협력단 총괄책임자인 테드 스캄보스 미국 콜로라도대 볼더캠퍼스 환경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만약 스웨이츠 빙하가 붕괴한다면 서남극의 얼음 대부분을 함께 바다로 끌고 들어갈 것"이라며 "스웨이츠 빙하 주변 빙하까지 가세하면 해수면이 3m 이상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남극 빙하가 완전히 소멸하면 전 세계 해수면은 현재보다 5.28m 정도 상승하게 된다.
해수면이 3m 이상 상승할 경우 약 6억명에 달하는 저지대 인구가 영향을 받게 된다. 일례로 대표적 저지대 국가인 네덜란드는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고 가장 낮은 지대는 해수면보다 6.7m 낮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평균 해발고도는 4m 수준이다. 오세아니아 폴리네시아에 있는 섬나라 투발루의 경우 평균 해발고도가 2m에 불과하다. 페티트 교수는 "우리는 이미 해수면 상승 궤도에 올랐고 이는 전 세계 해안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해수면 상승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하면 이를 최대한 늦추고 연안 공동체를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해수면은 1990년대 초반 정밀한 위성 기반 시스템으로 측정하기 시작한 이래 1993년부터 2002년까지 매년 2.1㎜ 상승했다. 하지만 2013년부터 2021년까지 해수면은 과거 10년간 수치의 두 배에 해당하는 4.4㎜씩 상승했다. WMO는 이 같은 추세로 계속 간다면 2100년에는 해수면이 2m 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이 지난 20일 발표한 '기후변화에 따른 장기 해수면 변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연안의 해수면 상승 속도는 최근 10년간 더욱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1991~2000년에는 해수면 상승 속도가 연평균 3.80㎜였는데, 2001~2010년에는 연평균 4.13㎜, 2011~2020년에는 연평균 4.27㎜로 계속 가속화했다. 이 같은 양상으로 지난 30년간 한국 연안의 해수면은 총 9.1㎝가량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 8월 ITGC 연구진은 서남극 대륙 아래 지각의 두께가 동남극 대륙보다 얇아 서남극의 지열이 동남극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스웨이츠 빙하가 유독 빠르게 소멸하는 또 다른 원인을 찾은 것이다. 스캄보스 연구원은 "미래 해수면 예측을 포함한 ITGC의 연구 결과는 전 세계 기후변화 대응 정책 입안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경은 기자]